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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대음희성

2015-04-01 기사
편집 2015-04-01 04:53:39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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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 등 순식간에 소문 확산 무분별 무한복제·대량살포 넘치는 정보로 세상은 혼란 마음 보듬는 따뜻한 말 필요 "

또다시 만우절이다. 올해는 또 얼마나 재미있고, 발랄하고, 기상천외한 거짓말들이 우리에게 실소(失笑)와 홍소(哄笑)를 가져다줄 것인지 기대가 된다. 다만 남을 해치고 불편을 끼치는 못된 거짓말은 이번 만우절에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나쁜 소문과 악성 거짓말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는 중이다. 모든 국민이 휴대폰을 하나씩 들고 다닐 만큼 IT 강국인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예부터 전해 내려온 '일파만파'라는 표현은 이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각종 SNS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온갖 소문과 악성 정보는 옛사람들이 감탄했던 것처럼 물결 퍼져나가는 속도가 아니라 아예 빛의 속도로 순식간에 전국 방방곡곡에 전달되곤 한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정보의 출처와 목적을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실시간 검색어 1위라는 15분간의 짧은 영광을 위해 소문은 더욱 자극적이고 과장되게 변신을 거듭한다.

좋은 소식을 듣고 칭찬하는 일에는 인색하지만 이른바 악플을 다는 일에는 무척 열심이라는 사실도 안타깝다. 세월호 사건 때 잠수사를 사칭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에게 아무리 괘씸하더라도 무려 만여 건의 악플이 달렸다니 그 증오의 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요즘 세상에는 더 이상 구덩이를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혼자서 깊이 감췄던 비밀을 중얼거릴 필요가 없어졌다. 휴대폰만 켜면 은밀한 소문과 한탄, 밝히지 못할 서운함과 애증을 사방에 전달해 줄 익명의 공모자들이 수없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테크놀로지로 인해 우리 생활의 질이 향상됨과 동시에 예기치 못했던 부작용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IT와 SNS는 '정보천국(infopia)'을 가져오는 순기능만큼 악성 '정보지옥(misinfodom)'을 연출하는 역기능에도 강하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엄청난 고급정보와 더불어 온갖 수다, 잡담, 악평, 소문, 이설(異說)이 난무하는 세상에 노출되게 되었다. "일반인(Das Man)들은 소문과 수다(Gerede) 속에 자신의 진정한 실존을 망각할 때가 많다"라고 이미 반세기 전에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가 지적했던 경고를 새삼 심각하게 귀담아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은 정말 시끄럽기 그지없는 곳이다.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밤을 지새워 다시 새벽이 될 때까지 전 세계의 소문꾼들은 지저귀고 지껄인다. 실컷 떠들라고 아예 이름까지 '지껄임'(twitter)이라고 지어줬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작명인가? 수다와 소문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이라는 테크놀로지 두 날개를 달고 마음껏 우리 삶의 공간을 날아다니며 무한복제와 대량살포의 공습을 감행하고 있는 중이다. 또다시 새로운 익살, 해학, 수다로 바빠질 2015년 만우절을 맞아 조금 뜬금없지만 고대 경전의 가르침을 생각해 본다. '큰 그릇은 더디 만들어진다'는 뜻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말이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며, "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大音希聲) 큰 모양은 형체가 없다(大象無形)"는 말과 함께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의 이야기도 다시 한 번 소음으로 가득 찬 우리 삶을 반성하도록 도전을 준다. 크고 강한 바람 속에도, 지진 속에도, 맹렬한 화염 가운데도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던 엘리야는 뜻밖의 '세미한 소리'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열왕기상 19장) 우리가 살아온 삶의 궤적, 경이로운 자연과 광대한 우주 속에 감추어진 그 세미한 음성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노자는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한다(聽而不聞 名曰希)"고 말하였다. 우리 삶의 시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잡음과 소문으로 피곤해진 귀를 씻고 정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세미한 소리만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일상에 찌든 삶을 위하여 올해 만우절 스스로에게 던지는 가장 기분 좋은 거짓말(?)이 되기를 바라 본다.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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