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새 책이 출간되어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 나가 봤다. 책은 어마어마하게 넘치는데 손님들은 손가락을 꼽을 지경이었다. 출판시장이 어렵다는 말을 들은 터라 그 한산함에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 보면 최적 동선을 선택해 책을 펼쳐 놓는 평대를 마련하고 있다. 손님이라면 당연히 궁금해서라도 들여다보게 되고 사지는 않지만 한 번쯤 펼쳐 보기라도 한다.

평대 진열이란 말이야 신간 위주라지만 내 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인기 있는 책들이 진열되고 있었다. 더 기운 빠지는 것은 진열이 되어 있는 책들은 무슨 교과 연계니 인성, 가치니 주제가 명확하고 용도와 흥미가 분명한 것들 일색이었다. 책의 타이틀처럼 교과 연계를 시키려면 보다 효율적인 참고서가 낫다. 말 그대로 인성과 가치를 높여 주려면 통합적, 유기적으로 맞물려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용기`니 `배려`니 `도전`이니 이렇게 낱낱이 세분화하고 분석해 아이들에게 주입을 하려 하는 책이 대부분이었다. 한편, 수요가 된다 함은 구매자인 독자가 스스로 결핍을 인정하는 결과라는 사실이었다. 아니면 주구매자인 부모의 욕구일 수도 있고 작가나 출판사의 발 빠른 세태 파악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이 책 수요의 기형적인 편식을 유발하고 있다는 생각에 몹시 씁쓸한 서점 나들이였다.

요즈음 텔레비전 방송을 보다 보면 시쳇말로 온통 `먹방`과 `쿡방` 일색이다. 거기에 신체의 부분 부분을 음식물화시켜 사람의 몸을 마치 한 권의 약학서로 꾸미고 있는 듯하다. 채소 한 포기, 과일 한 개를 먹더라도 몸의 이로움을 좇아 분석하고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먹거리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귀생(貴生)과 섭생(攝生)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귀생이란 자신의 생을 귀하게 여겨 의식주에서 온갖 좋은 것들만 취하는 경우이고 섭생이란 그것들을 최소한으로 억제하여 조절을 한다는 내용이다. 어느 것이 이상적인 삶인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말로야 섭생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은 귀생의 도를 넘어선 섭생으로 그 의미조차 변질되고 있다. 그렇게 몸을 생각해서인지 대체적으로 `나이보다 젊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고 실제 나이로는 가늠이 안 되는 외모와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흔하다.

그러나 몸은 그렇다손 치고 우리의 정신과 인성은 어떠한가. 현실은 경제의 논리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한 세태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익명성은 불안을 가져다주며 그 불안의 표출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상이 사회적 병폐로 나타나고 있다. 눈만 뜨면 기사화되는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건 사고들로 정신이 아뜩해질 때가 많다. 전문기관의 자료를 빌리자면 최근 5년 사이 분노조절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가 30% 이상 증가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병은 자기방어적 성향이 강한 데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생각이 깊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단정을 내릴 수 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를 쓰면서 항상 고민하는 것이 `생각거리`다. 가급적이면 결론을 내려주지 않으려 하고 부득이 주제를 부각시켜야 할 때는 우회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작가 경험상 생각 넓히기에는 책읽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책을 많이 읽은 아이와 읽지 않는 아이가 극명하게 표가 난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는 우선 말하기 전에 생각부터 한다. 그리고 말이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읽지 않는 아이의 말은 횡설수설 앞뒤가 마구 뒤섞여 버린다. 어떤 때는 조급함에 엉뚱한 말을 쏟아놓고 만다. 이러한 현상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화부터 먼저 내는 사람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없다. 그만큼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온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을 가려 먹으면 뭐할 것인가. 정신적 섭생을 하지 않고는 결코 육체가 귀해질 수 없다. 자신이 해치지 않아도 남으로부터 해침을 당한다. 이것은 나와 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될 일이다. 답은 책 속에 있다. 제발 책 좀 읽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홍종의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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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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