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콴유, 반부패·법치로 국가 성장 일본군 해외파견 우려 강력 경고 박근혜 정부 종북세력 척결 동시에 일제 만행 등 세계에 바로 알려야 "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29일 베풀어진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장례식에 박근혜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21세기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리콴유 타계로 전 근대와 제국주의 질곡을 극복하고 아시아의 재도약을 이끈 이승만, 박정희, 덩샤오핑, 리콴유로 이어지는 20세기 아시아의 `위대한 리더십 시대`가 막을 내렸다.

2014년 싱가포르는 1인당 국내총생산은 5만 6000달러로 아시아 1위, 세계경제포럼 국가 경쟁력은 세계 2위,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 실업률은 2%였다. 가난한 어촌마을을 5만 달러가 넘는 부강한 나라로 탈바꿈시킨 리콴유 성공 요인은 국가에 대한 헌신, 실용주의 정신, 개혁 모험정신, 원칙주의, 업적주의였다. 리콴유는 반부패 정책과 법치를 고수해,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 반열에 올려놓았고, 세계적인 금융·물류 중심지로 육성했다. 리콴유는 1994년 포린 어페어스지 편집장과 인터뷰에서 "가족 중심적인 아시아에 서구식 민주주의 전범 적용은 적합치 않다"며 "권위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개인의 자유 앞에 놓는 아시아적 가치와 생활 방식이 아시아의 경제성장을 가져왔다"고 역설했다.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직전 한국을 방문했던 리콴유는 회고록 `일류 국가의 길`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한국의 조기 산업화는 이루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기술했고 1986년 베트남 사람들에게 "박정희를 배우라"고 권고했다. 박정희가 쿠데타했을 때 한국의 국민소득은 87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고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았을 때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쑥대밭이 된 혼란한 사회였다. 박정희, 덩샤오핑, 리콴유는 제국주의 침략과 역사 지체의 이중 모순을 극복하고 산업화를 이룩한 지도자들이다. 세 사람에게 통찰력, 강대국 간섭에 흔들리지 않는 추진력, 끊임 없는 혁신 정신이 있었기에 기적이 가능했다.

리콴유 작고 하루 전 22일 박정희 산업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추진했던 송인상 전 재무장관이 향년 101세로 작고했다. 이승만 정부 부흥부장관으로 7개년 경제개발계획 중 3개년 경제개발계획을 4·19 직전에 성안한 송인상은 박정희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구체화한 제1급 공신이다. 이승만은 송인상에게 전후 복구작업과 함께 장기 경제 개발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무역과 관광진흥정책 입안도 당부했다. 송 장관이 만든 경제개발계획은 트루먼 아이젠하워까지 지속됐던 상호 안전보장법에서 케네디의 뉴프런티어 정책으로 스스로 도울 수 있는 나라만이 유상 차관을 받을 수 있다는 신대외원조법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대체되는 것을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박정희 산업화는 이승만이 준비한 경제개발계획과 이승만이 교육시킨 인재들이 참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승만의 혁명적인 대한민국 건국과 자본주의 편입 작업 등이 박정희 산업화의 초석이 된 것이다.

박정희는 1965년 7월 27일 이승만 장례식 추모사에 "조국을 위해 헌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심으로써 위대한 인물이라는 명예를 되살리셨다"며 4·19와 5·16과 같은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반공투쟁을 선도했던 것을 기억하고 재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26일 이승만 건국 대통령 탄생 140주년을 맞아 이인수 이승만기념사업회 이사는 "1960년 하야 후 55년은 `반 이승만 시대`였으나 이제 고인에 대한 정당한 평가로 대한민국의 정체성도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범훈 전 교육문화수석이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박 전 수석은 검찰 소환 전에 이명박 정부의 종북자학 국사교과서 보급과 공교육 파산의 책임을 통감하고 광화문에서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계속되는 과거사 망언에도 명쾌하게 반박 못하는 박근혜 정부의 교육문화수석도 마찬가지다. 리콴유는 "일본군의 해외 파견 허락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주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었다.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외치며 일으켰던 태평양전쟁이 재발하지 않게 박근혜 정부는 현대사 정리를 서둘러, 일본 군국주의 범죄를 세계에 알려야 할 것이다.

건양대 대우교수 前 독립기념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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