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추억의 마니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처음으로 내놓은 장편 애니메이션 `추억의 마니`. 그래서 영화는 30여년 간 지켜온 지브리의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다음 단계로 넘어서기 위한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12살 소녀 안나. 겉보기엔 평범한 소녀지만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믿으며 자신만의 벽을 쌓는다. 그리고 자신의 벽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요양차 방문한 바닷가 마을의 낡은 저택에서 금발의 소녀 `마니`를 만나게 된다. 마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안나는 마니의 초대로 저택의 파티에 참가하지만 신기하게도 다음날 낮에 찾아간 저택은 아무도 살지 않은 폐가로 변해있는 등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갑자기 마니는 사라지고 낡은 저택에 새롭게 이사온 소녀 사야카와 안나는 우연히 마니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야기에 놀라게 된다.

영화는 자신의 상처와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맞추지 못하던 한 소녀가 눈을 맞출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소녀가 자신과 세상을 부정하는 이유는 단순해서 더욱 명확하다.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존재근거가 부정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사춘기 소녀의 세계를 흔들고 있다. 흔한 성장담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사소한 사건을 근사한 작품으로 만들어온 지브리의 저력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요네바야시 감독의 노련한 구성에 있다.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끌어 온 지브리 특유의 작화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곳곳에서 요네바야시 감독에 의한 변화를 담고 있다. 지브리의 장점은 고스란히 살린 채 정서적으로는 더 깊어진 느낌이다. 영화는 마니와 안나의 만남이 환상이라는 점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일반적인 주인공들과 달리 안나 역시 마니와의 만남을 일종의 꿈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타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땅만 바라보던 안나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오면 마니와 함께 하는 환상의 세계가 시작된다. 주목 할 부분은 이 부분에서 안나가 바라보는 세상을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공유한다는 점이다.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조망하던 기존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는 뚜렷히 구분되는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안나의 시선과 함께 시작되는 환상의 세계에도 있다. 영화는 그동안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여전히 환상의 세계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과 환상의 세계의 간극은 상당부분 좁혀졌다. 화려한 마법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화면 대신 영화의 배경인 훗카이도의 시골 마을처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세계가 관객들을 기다린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주요 소재였던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과 모험 대신 외로움에 지친 한 소녀와 또 다른 소녀의 아름다운 교감이 스토리 라인을 채우고 있다. 동심을 추구하던 이전과 달리 청소년기에 접어든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내세운 것 역시 미야자키 이후의 지브리가 선택한 변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 안나의 내적인 성장을 표현하는 소소한 장치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안나는 느리지만 스스로 깨닫고 성장한다. 마니와 함께한 시간, 물과 바람의 차가움, 따뜻한 추억 등을 통해 모두 자신은 사랑받고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깨달음과 함께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던 소녀의 불안 역시 사라진다. 관객들은 환상적인 장치나 설정 없이도 안나의 시선을 따라가며 마음 속에 떠오르는 `나는 정말 행복한지`, `가장 외로운 순간, 내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는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된다.

동심과 환상, 모험의 세계를 그리던 이전까지의 지브리를 기대한다면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매력적인 것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고요함 때문이다. 고요함을 그 나름의 매력으로 즐길 수 있다면 극장을 나서며 마음 속에 따뜻함을 가득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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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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