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잡초마을 계곡에서 채취된 자갈과 모래가 들어 있는 시험용 용광로가 강한 불에 가열되자 용광로 밑부분에서 쇳물이 흘러나왔다. 두껍고 탁한 다갈색이 아니라 맑은 은백색의 쇳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철 성분이 좋다는 것이었다. 함경지방에서 제철소들을 총괄 관리하는 영감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됐어. 아주 좋아."

주위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고 함흥감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기뻐했다. 박 군사가 김인태를 데리고 나오자 감사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수고했소. 얼마나 고생을 했소."

김인태는 유배생활에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여위어 있었으나 그의 눈은 여전히 강한 의지에 번쩍이고 있었다.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한반도 북쪽 끝에 있는 빈촌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제철소가 건설되고 대량의 철이 생산되게 되었다. 이미 마을 여기저기에 들어선 크고 작은 천막들은 철거되지 않았다. 감사의 허가를 얻어 더 많은 천막이 세워지고 있었고 제철소에 운반된 나무들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이 건축자재로 쓰여져 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집들 중에는 큰 상점들도 있었다. 관리들이 서둘러 도로를 개설하려고 측량을 하고 있었다. 잡초마을 대장간 주위에는 이미 김인태의 지휘로 개량된 화살촉, 창날들이 만들어져 있었고 여러 가지 농기구도 개발돼 생산되고 있었으며 그건 바로 상품이 되고 그 일대는 거대한 상설장터가 들어설 것 같았다.

함흥감사 자신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큰 천막을 하나 치고 거기서 집무를 계속했다. 제철소에서 나온 철을 중앙정부에 보내면서 직접 왕에게 빨리 제철소 허가를 해주고 신속한 지원을 해달라는 진정이었다. 진정에는 얼마만 한 투자가 어떤 기간 동안 어떻게 이루어져야 된다는 세목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감사는 또한 시험 용광로가 가동되기까지 유배자 김인태의 노력과 공을 상세히 기록했고 김인태의 유배를 즉각 풀어줄 것과 김 대감에 대한 유배 재판도 재심되어야 된다고 기재했다. 그 직소가 왕에게 상납되면 장안 4대문 안 관가에는 또 한 번 큰 변동이 일어나고 많은 유배자가 생길 것이었다. 조선의 유배제도라는 형사정책은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는 나쁜 정책이었다. 형사정책이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들을 응징하는 것이라면 조선의 그것은 온정과 평등을 잃은 것이었다. 그건 범법자들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기존 왕족과 양반들의 신원을 보장하려는 정책이었다. 형사정책이 범법자를 사회에서 격리, 그들을 교화하여 사회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그 정책은 그 목적을 잃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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