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총리 '과거직시' 발언 日 수탈 역사 날조와 대조 말 한마디가 누군가엔 비수 상처 주는 '망언' 깨달아야 "

필자가 젊은 시절에 저지른 경망스런 언사 한 가지를 부끄러이 회상한다.

독일 유학 시절이던 35-36년 전의 일이다. 유학생활은 누구나 그렇듯 쪼들리는 처지가 매우 궁색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여름방학 기간에는 현지 성당의 일을 도와주고 사례비를 얻어서 학비 보충을 하였다. 수도원에 몸을 의지해 지내면서, 일요일에는 휴가를 떠난 인근 지역 성당의 신부들을 대신하여 미사를 집전하러 가는 것이었다. 방학을 이용한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다. 자동차가 없는 필자를 그 지역 천주교 신자 한 분이 매 일요일에 태워다 주곤 했다. 그분은 당시 70대 노인이었다. 주일미사가 끝나면 필자를 수도원으로 다시 태워오면서 중간에 그분은 호프집 앞에 자동차를 세우고 생맥주를 한 컵 사주곤 했다. 자신은 운전자이기에 마시지 않으면서 그 노인께서는 필자의 마시는 모습을 미소로 바라보기만 했다. 서툰 외국말로 미사를 집전하느라고 잔뜩 굳어진 필자의 혀가 시원한 생맥주 덕에 긴장을 풀게 되어 그분에게 불쑥 허튼 질문을 던졌다. "선생께서는 히틀러의 나치 시절에 무엇을 했습니까?"

젊은 외국인 사제의 수고를 생맥주로 사례하던 그 노인의 미소 띤 얼굴이 순간 벌겋게 상기되며 당황해 하였다. 괴로운 표정이 되어 머뭇거리다가 그분은 다음과 같이 필자에게 대답했다. "그 시절 우리 독일은 광신(Fanatismus)의 시대였었지요. 영혼이 없는 짐승들의 세상 같았습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 대답을 들은 필자는 질문 던진 게 되레 부끄러워 아무 말도 더 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그렇듯 괴로워해 하는 독일인들의 심장을 칼로 후비듯 필자가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그 다음 일요일에 그 노인을 만나면서 필자는 그 질문을 던졌던 경망함에 대하여 사과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대답했다. "고마워요. 부끄러운 과거를 잊지 않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당신이 일깨워준 거잖아요."

최근에 일본을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은 과거를 분명히 직시한다"고 말했다. 그러한 독일인을 필자는 35년 전에 만났던 것이다. 필자가 만났던 그 노인의 양심처럼 메르켈은 일본인들 앞에서 과거에 대한 `직시`를 고백했다. 과거에 대한 `착시`에 사로잡힌 일본인들 앞에서 말이다.

그러나 한편,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회상해보면, 그때의 독일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던 내 혀는 너무 경망했다는 생각이다. 아니, 젊은 나의 혀는 그분을 향하여 잔인하게 휘두른 흉기와 같았다. 나 자신에게도 섬뜩해지는 내 혀가 내 입안에 있다. 그러한 나의 입속에 시원한 생맥주 한 컵을 선사해주던 그 노인을 향하여 입을 열어 날카로운 칼처럼 혀를 내둘렀던 것이다. 나 살자고 먹을 걸 넣으려 벌리는 나의 입은 다른 사람 괴롭히자고 흉기를 내지르는 무기고란 말인가. 부끄럽다.

혀를 놀려서 아무렇게나 뱉어지는 소리라면 그건 사람의 말이 아니다. 더욱, 사람을 죽이는 말이라면 그건 야만이다. 그러한 야만을 언제라도 드러내는 혀를 감추고 있는 입들이 많다. 그 혀가 입술을 열고 발사하는 소리들이 횡행으로 날아다니는 것을 여론이라고들 한다. 그 여론은 법을 앞서 가면서 `수꼴` 또는 `좌빨`이라는 편을 갈라놓고, 생각 다른 쪽을 섬멸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혀들이 무섭다. 잔인하다 우리의 혀가! 서로를 살리는 말을 해야 할 혀가 아니겠는가.

치우친 여론몰이를 통하여, 즉 정당한 사법심의에 앞서 방송신문과 온라인 등을 통하여, 쏘아대는 혀끝의 맹독을 감당 못한 사람들이 자살하는 뉴스에 우리는 놀라지도 않는다. 혀로 사람을 그렇게 죽이는데도….

그만큼 입에서 가슴속으로 한참 들어가 앉아 있는 우리의 심장은 입 밖으로 쏘아대는 혀끝의 독에 대해서 무디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심장은 건강(선량)하게 잘 뛰고 있다 한다. 양심(良心)과 독설(毒舌) 사이가 한 몸 안에서 아주 멀게 괴리되어 있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직시할 줄 아는 독일인들의 양심에 대비하여, 함께 사는 우리 사이에 내두르는 혀는 혹 양심 없이 잔인하고 경망스럽진 않은지….

윤종관 천주교 하부내포성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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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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