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햑예연구사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햑예연구사
일제로부터 자주독립하기 위한 노력은 만화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인 만화가 `토끼와 원숭이`이다. 이 작품은 수필가이자 아동문학가인 마해송(馬海松, 1905~1966)의 원작을 김용환(金龍渙, 1912~1998)이 그린 만화이다. 이 만화는 무사 정권을 기반으로 하는 원숭이 나라가 바다 건너 토끼 나라를 침략한 후, 이를 발판 삼아서 이웃 동물나라까지 확전시켰으나 평화를 사랑하는 연합세력에 패망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작자 마해송(본명 마상규)은 개성 출신으로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고발하고 풍자하기 위하여 동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한 의인화 동화를 세상에 내놓았고, 김용환은 자주독립 국가에 대한 염원을 담아 광복 전후의 정치 상황에 대한 비유와 상징으로 만화로 만들어 냈다. 1946년 5월 1일에 조선아동문화협회를 통해 간행되었으며, 총 34면(15.0×20.5㎝)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 흐름에 맞춰 시사 풍자 만화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36년간 일제하에서 억눌려 있었던 당 시대의 독자들에게 위안을 주어 출간되자마자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의 만화 단행본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광복 후 예술·문학 등 문화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서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최초의 만화 단행본은 조선아동만화가협회가 `주간 소학생`에 연재되었던 만화 중에서 인기를 끌었던 회차만을 모아 1946년에 문고판으로 출간한 `흥부와 놀부`(김용환)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순수하게 만화 단행본의 출간을 위하여 제작된 만화로는 `토끼와 원숭이`가 시대적으로 가장 앞서는 자료이다. 이 만화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의 작품과 비교하여도 뒤지지 않을 만큼 예술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토끼를 향토적인 이미지로 그린 반면, 일본으로 상징되는 원숭이는 이중적이며 차가운 캐릭터로 등장시켜 한국형 만화 캐릭터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이 작품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2012년에 경매를 통해 구입하였는데, 원래 소장자는 큰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 만화책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당시에 출간된 다른 만화들과 비교해 만화인쇄용지나 인쇄 품질도 우수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현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부설 기관인 한국만화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2013년에 등록문화재(제537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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