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예산 덕산면 산불감시원의 하루

17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한 마을에서 논두렁을 태우던 불이 크게 번지자 인근 공사현장의 직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최정 기자
17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한 마을에서 논두렁을 태우던 불이 크게 번지자 인근 공사현장의 직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최정 기자
"아주머니 불 꺼유."

산불감시차량에서 경고방송과 함께 감시공무원의 호통이 이어진다. 깻대를 태우던 아주머니는 "남들 다 태우는디… 그럼 안방에다 쟁여놓나. 바람이 덜 불길래 오늘 태운겨"라고 도리어 역정을 낸다. 도립공원이 인접한 동네였는데 바로 옆의 밭들도 다 태워져 있었다. 큰 불이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17일 예산군 덕산면사무소 직원들과 산불감시원의 하루를 들여다 봤다.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소식에 논·밭두렁을 태우는 일손(?)들도 바빠졌다. 보통 때는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은 비소식 때문인지 오전부터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 올랐다.

본격 영농철을 맞아 논·밭두렁을 태우는 사례들이 많아진데다 건조한 날씨 탓에 산불 발생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선 지자체들은 산불예방 대책본부를 정비하고 산불감시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주변에 가야산도립공원, 수덕사가 위치한 덕숭산 등을 끼고 있는 덕산면은 7명의 산불감시원을 고용하고 있다. 감시원 1인이 3개 리(里)를 맡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돌며 계도활동, 잔불정리 등을 한다. 이들의 움직임은 위성항법장치(GPS)로 확인 가능하고 무전기를 통해 대화를 한다.

산불감시원들은 하루종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승강이를 벌이면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주민들과의 마찰 때문에 힘든 것은 없다고 했다.

산불감시원들의 고충은 기름 값에 있었다. 3개 리를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계도활동을 하기 때문에 기름값이 만만찮게 든다. 한달임금 130만-150만 원 정도에서 기름값을 떼고 나면 인건비는 얼마 안된다는 것이 감시원들의 이야기다.

이날은 논·밭을 태우는 곳이 많았던 만큼 아찔한 상황도 많았다.

산불에 버금가는 연기에 현장으로 달려갔더니 주변에서 상하수도 공사를 하던 직원 7명이 불을 끄고 있었다. 소방관이 도착할 때 쯤 불씨가 잦아들고 있었다. 농부들이 논에 붙인 불이 크게 번지자 주변에서 작업을 하던 직원들이 인근 야산으로 번질까 달라붙어 끈 것이다. 공사를 하던 직원들은 "2주 전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해 불똥에 다쳐가며 불을 껐는데 오늘 또 이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을 내 놓고 산불감시원이 다가가니 그냥 도망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텃밭의 작은 불이 바람이 불어 확산되면 노인들이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매년 봄 논밭에 불을 내는 건 한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해충을 죽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논·밭을 태운다고 해충방제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하루종일 현장을 누비는 산불감시원들은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까지 현장을 지키며 산불을 감시하고 있다. 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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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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