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종 3년(1049)에 매년 6월 6일에서 입추까지 최고급 관리에게 얼음을 나눠주게 하였으며, 조선 태조 5년(1396)에는 동빙고(東氷庫)와 서빙고(西氷庫)를 설치하여 얼음을 궁중과 관아에 공급하였다. 얼음의 저장과 출납제도는 매우 엄격히 하였는데 관리를 소홀히 하여 얼음이 녹게 되면 파면하였으니 이는 식품 저장에 기울인 노력의 일면을 보여준다.

세월은 흘러 1965년에 금성전자에서 GR-120 모델을 국내 최초로 출시하자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큰 반향이 일었다.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더운 여름에도 얼음을 만들어 사용한다는 것과 음식물의 신선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나 보다. 냉장고를 구입하면 으레 이웃에 얼음을 돌리곤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처럼 가정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냉장고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부 서민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귀한 가전제품이었던 것이다.

한국 최초로 상용화된 가정용 식품 보관 냉장고인 금성 냉장고 GR-120(너비 500㎜, 폭 115㎜, 높이 520㎜, 무게 66㎏)은 냉동기술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가정용으로 시판되었다. 냉장실과 냉동실 일체형으로 구성된 간단한 구조이며, 저장용량은 120L이다. 이 냉장고는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냉동기를 분해·조립하여 구조를 익힌 뒤 부품을 자체 개발하는 등 자체 기술 개발로 탄생되었다. 1965년 시판 당시에 가격은 8만 600원으로 매우 비싼 편이었지만 첫 시판된 6000대가 보름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 성장과 함께 국내에 냉장고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1975년에는 간접식 냉각방식의 국산화에 성공하였으며, 1980년에는 500L급 대형화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GR-120은 냉장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1994년 한국형 냉장고인 김치냉장고 개발에 이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축적된 기술은 실내용 에어컨, 대형 건물의 냉·온방 컨트롤, 대형 냉장시설 등에 응용되는 등 냉장 산업의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냉동기 산업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제품이라는 측면 외에도 한국 식생활 변화에 영향을 준 상징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금성 냉장고 GR-120은 2013년에 등록문화재 제56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주)LG에서 보관하고 있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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