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 1965년에 금성전자에서 GR-120 모델을 국내 최초로 출시하자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큰 반향이 일었다.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더운 여름에도 얼음을 만들어 사용한다는 것과 음식물의 신선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나 보다. 냉장고를 구입하면 으레 이웃에 얼음을 돌리곤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처럼 가정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냉장고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부 서민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귀한 가전제품이었던 것이다.
한국 최초로 상용화된 가정용 식품 보관 냉장고인 금성 냉장고 GR-120(너비 500㎜, 폭 115㎜, 높이 520㎜, 무게 66㎏)은 냉동기술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가정용으로 시판되었다. 냉장실과 냉동실 일체형으로 구성된 간단한 구조이며, 저장용량은 120L이다. 이 냉장고는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냉동기를 분해·조립하여 구조를 익힌 뒤 부품을 자체 개발하는 등 자체 기술 개발로 탄생되었다. 1965년 시판 당시에 가격은 8만 600원으로 매우 비싼 편이었지만 첫 시판된 6000대가 보름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 성장과 함께 국내에 냉장고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1975년에는 간접식 냉각방식의 국산화에 성공하였으며, 1980년에는 500L급 대형화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GR-120은 냉장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1994년 한국형 냉장고인 김치냉장고 개발에 이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축적된 기술은 실내용 에어컨, 대형 건물의 냉·온방 컨트롤, 대형 냉장시설 등에 응용되는 등 냉장 산업의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냉동기 산업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제품이라는 측면 외에도 한국 식생활 변화에 영향을 준 상징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금성 냉장고 GR-120은 2013년에 등록문화재 제56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주)LG에서 보관하고 있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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