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충청권 행보가 잦아지고 있다. 어제는 대전 선화동 옛 충남도청사에 내려와 당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지난 3·1절 천안 병천면 소재 유관순 열사 추모각 참배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 문 대표 행차에는 무게감이 실린다. 야당 최고 당직자의 동선이라는 의미 못지 않게 차기 대선 주자라는 이미지 효과를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여기까지는 특별히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충청권을 자주 찾는 것과 차기를 내다보는 정치인으로서 호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과는 궤적 면에서 차이가 난다. 자주 올수록 지지도가 반드시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잘 안 온다고 이유 없이 배척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메시지 포인트는 아쉽다. 화법이 애매하거나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에 머물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면 사람들 심리는 반신반의한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가봐야 아는 캐릭터라는 선입견을 공연히 자극하기 알맞다. 이를 불식시키려면 되도록 지역 관심사안에 대해 가부를 명확하게 하는 화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되면 되는 것이고 여의치 못한 사정이라면 양해를 구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충청권 선거구 증설 관련한 입장의 경우 문 대표 심중은 가늠이 잘 안되는 편이다. 좋게 표현하면 신중하다는 얘기이지만 사실은 수사적인 답변으로 간주될 수 있다. 긍정도 부정도 않는 일종의 NCND 전략과 흡사하다. 국회의원 선거구 재획정 논의를 관장하게 될 국회 정개특위 구성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하나의 사례다. "잘 반영하게 될 것"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분도 포함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감이 잘 온다. 물론, 주변 인사들이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음을 부연 설명함으로써 일부 해소되기는 했다.

야당 대표이자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대표다. 그런 지위에 있다면 충청권 최우선 현안이 선거구 증설 문제임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대전 방문에 나섰을 터다. 이는 해묵은 과제이고 지역에서는 중대한 현안이다. 당연히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명쾌하게 정리하고 넘어갔어야 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듣는 것도 고역이라면 고역이기 때문이다. 사안 자체는 그리 까다롭지 않다. 인구비례로 보나 표의 등가성 측면에서 보나 충청권 선거구 증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식으로 못 박으면 충분하다.

비단 선거구 증설에 그치지 않는다. 문 대표 쯤 되면 충청권에서 진전된 이슈를 던지는 감각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세종청사 부처 공무원들의 국회 출장 부작용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서 야당이 대안을 제시하면서 주도권을 잡는 방법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조금 불편할지 모르나 세종시에서 국회 상임위 활동을 하자면 못 할 것도 없다. 상임위 차원에서 의원들이 세종시로 찾아가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정치개혁이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이다. 이런 것도 문 대표가 단안을 내리기에 달렸다고 판단된다. 가뜩이나 정치권의 세종시 조기 정착 레퍼토리가 식상해지는 판이다.

십 수년 간 충남도민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는 안면도 개발 무산 사태 역시 문 대표는 강 건너 불 구경할 입장이 아닌 것 같다. 충남도정 현안으로 승계돼 온 골치거리이긴 하지만 이 문제도 문 대표 체제의 야당이 앞장서 돌파구를 마련해준다면 지역민들로선 기분 좋은 채무를 지는 것이다. 굳이 정부·여당을 끌고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국가 정책단위로 편입시키든, 국회에서 법제화 카드를 구사하든 매듭을 풀어주는 게 본질이다.

문 대표는 충청권과의 연결고리가 강한 편에 속하지는 않는다. 통상적인 인연을 맺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대단한 흠결로 볼 근거는 없다. 그런 그의 빈번한 충청행은 지역민들과 유대감을 키우는 유의미한 기회나 마찬가지다. 정치인이 자주 얼굴을 내밀고 여론의 쌍방향 메신저인 언론과 접촉면을 넓히는 일은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훗날을 도모한다는 함의가 있겠다. 그런데 2%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 걸린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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