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민원인의 상담전화를 받았다.

소유하고 있는 다중주택의 세입자가 2년간이나 임대료를 내고 있지 않았고, 당연히 밀린 임대료를 납부할 것을 독촉하자 그 세입자는 불법으로 설치한 싱크대를 문제 삼아 해당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겠다며 건축주를 협박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18개의 방마다 싱크대를 설치한 것이 화근이었다.

민원이 접수되면 18명 세입자의 이사비용은 물론 보상금까지 지급한 후 원상복구 공사를 시행하여야 하는데 이럴 경우 밀린 임대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세입자는 알고 있었고,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결국 밀린 임대료는 없던 일로 하고 이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명백한 불법 앞에 전문가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건축법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건축물은 28가지 용도로 구분하고 있다. 그중 주거용 오피스텔과 고시원을 포함하여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10가지가 훨씬 넘는다. 주택경기 활성화, 서민주택 공급 등의 구실로 계속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문제점으로 인하여 폐지될 것으로 예상했던 도시형생활주택이 아직도 존속되고 있다.

주거용 건축물 중 만성적인 불법과 끊임없는 민원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 다가구주택, 고시원 그리고 다중주택이다. 다른 용도의 불법이 수익의 증대를 위해 행해지는 것인 반면, 다중주택과 고시원의 불법은 불법행위가 없으면 아예 임대 자체가 불가능한 법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현행법상 다중주택은 각 방은 독립된 주거의 형태가 아니어야 하며, 이는 취사시설(싱크대)의 유무로 판단한다. 고시원 역시 취사시설이 금지돼 있다. 한동안 어처구니없게도 각 방에 화장실조차도 허용하지 않다가 현재는 싱크대만을 규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고시원과 다중주택은 사용검사 후 취사시설을 불법으로 설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소유한 건축주는 모두 범법자인 셈이다.

집을 소유하는 순간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민원이 제기된 곳만 제재를 가하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99.9%가 지키지 못하는 법은 취지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폐기 또는 개정함이 마땅하다.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으므로 모법이 아닌 시행령만 개정하면 해결된다. 관계당국에서 이러한 현실을 모르고 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방치하고 있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손근익

전 대전시건축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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