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 정창권 지음·푸른역사·285쪽·1만5000원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조선시대 부부관계에 대한 대부분의 통념이다. 흔히 사람들은 조선시대에는 남성 우월주의적 부부관이 통용됐을 거라 생각한다. `삼종지도 (三從之道)`, `부창부수 (夫唱婦隨)`, `내외 (內外)` 등 남자로서는 말만 들어도 기쁨에 몸서리 쳐지는 부부관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오히려 조선시대의 부부관은 남녀평등에 기반했었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가 돼 가정을 이루고, 서로를 존중하는 그런 관계였단 얘기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믿기 어려운, 아니 어느 여성 우월주의자의 상상으로 치부하고 싶은 남녀 평등에 입각한 조선의 부부관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소통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런 모습들이 실증적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

평소 조선인의 삶을 얘기로 풀어 세상에 알려왔던 고려대 정찬권 교수는 자신의 저서 `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라는 책에서 이 같은 부부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부관계가 돈독했던 10쌍의 사례를 통해, 서로를 알아주는 친구로서의 부부, 서로를 키워주는 `인생동료`로서의 조선시대 부부상을 그려낸 것이다.

책에서는 남녀평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 우월주의적 상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 예는 경북 안동의 한 무덤에서 발굴된 `원이엄마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에서 원이엄마는 남편을 자네라고 칭한다. 통상 자네라는 표현은 윗사람이 아래사람을 부를 때 쓰는 표현이다.

`자네 항상 내게 이르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함께 죽자"하시더니, 어찌해 나는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나와 자식은 누구에게 기대 어찌 살라하고, 다 버리고 가시는가? 자네는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졌고 나는 자네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졌던가?` -원이엄마의 편지 중에서.

저자는 이 같은 예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부부가 내외했다는 말이 무색하다고 말한다. 조선의 부부도 은근하면서도 애틋한 멋진 사랑을 했다는 것. 책은 이 같은 조선시대 부부사랑의 비결을 5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했다. 일례로 퇴계 이황은 아내 권씨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보듬어 잘 살았다. 둘째는 소통이다. 요즘처럼 문자메시지는 보내지 못했지만 편지로 안부를 묻고 은근한 사랑을 전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 했다는 얘기다. 세번째 조선 부부의 사랑 비결은 적극적 사랑 표현이다. 거리에서 볼썽 사나운 사랑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애정표현에 인색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편지를 통해 수 차례 "엎드려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 끝이 없다"며 사랑을 표현했다. 부부가 가장 좋은 친구였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학문적 동료로, 친한 벗으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돼 한 평생을 살았다. 마지막 조선시대 부부사랑의 주안점은 자식 사랑이다.

자유연애라는 이유로 만남과 헤어짐이 너무 잦은 요즘이다. 20대 커플의 평균 연애기간 100일. 33만 쌍이 결혼해 11만 쌍이 이혼하는 나라는 자랑이 아니다. 부부의 사랑이 매말라가는 요즘, 남녀 이별이 훈장이 된 시대, 선인들의 사랑에서 부부관계의 미학을 배우는 것은 어떨까. 성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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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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