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그해 12월 중순이 되어도 눈은 내리지 않았고 폭풍만이 기분 나쁜 휘파람을 불면서 불어닥치고 있었다.

정 교사는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는데 가끔 멧돼지 고기를 갖고 오는 마을 포수들이 찾아왔다. 인근 산에서는 사냥이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수 세 사람이 50리나 떨어진 깊은 산속까지 들어갔다는 말이었다. 멧돼지가 잡히면 오고 그렇지 않으면 현상금이 걸려 있는 늑대라도 잡고 그것도 안 되면 털이 좋은 여우나 오소리라도 잡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흘 동안 돌아다녀도 멧돼지는 그림자도 없었고 늑대는 아예 멸종이 되어 있었으며 여우도 오소리도 보지 못했다. 마른 겨울에 산이 온통 얼어붙어 있었고 움직이는 짐승이 없었다. 포수들은 겨우 잡은 꿩 몇 마리를 놓아두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날 너구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거의 매일같이 가족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 쓰레기터나 도랑을 뒤지던 녀석들이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웬일일까."

내일은 나타나겠지라고 생각했으나 다음 날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너구리들은 1주일 동안 내내 나타나지 않았다. 정 교사는 염려가 되었다. 매일같이 나타나던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으니 섭섭하기도 하고 염려도 되었다.

정 교사는 머슴을 데리고 앞산 바위틈에 있는 너구리 소굴로 가봤다.

없었다. 너구리들은 거기에도 없었다. 소굴이 텅 비어 있었고 냉기가 차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모두 얼어 죽었을는지도 모릅니다."

머슴이 말했으나 새끼가 여덟 마리나 되는 그 식구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전날 왔던 포수들은 깊은 산도 모두 얼어붙어 돌아다니는 짐승이 없다던데….

너구리들은 그 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라디오가 그해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기온이 40도까지 떨어졌다고 떠들면서 연일 얼어 죽은 사람들의 소식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을 포수들도 그동안 인근 산들을 돌아다녔으나 너구리들은 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아마도 다른 산짐승들처럼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사도 그렇게 생각했다.

"불쌍한 것들…."

너구리는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야성이 강한 짐승이었으며 사람들의 보호를 받는 애완동물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짐승이었으나 그래도 정 교사의 집에 오면 보호를 해줄 수도 있었는데 녀석들은 끝내 집에 나타나 보호를 청하지 않았다.

그해가 지나가고 다음 해가 되었으나 너구리들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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