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사람들은 5월쯤이면 깨닫게 될 것이다. 개통이 한 달도 남지 않은 호남고속철도가 광주에 득(得)보다는 실(失)이 더 많다는 것을. KTX 고속열차 운행이 코앞에 다가온 게 지금은 반갑기 그지없겠지만, 광주 지역경제에 적잖은 생채기를 내게 됨을 곧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한 편성에 최대 410명까지 태울 수 있는 `KTX-달리안`의 좌석에는, 그동안 광주 시내에 있는 백화점과 대형 병원에서 쇼핑을 하거나 진료를 받던 사람들이 서울의 백화점 혹은 유명 병원을 가기 위해 앉게 될 것이다. 광주 송정역에서 서울 도심에 있는 용산역까지 한 시간 30분 대에 갈 수 있으니 꼭두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느긋하게 쇼핑을 하거나 진료를 받고도 저녁 나절이면 광주에 도착할 수 있다. 대전과 천안, 대구에서 소리 없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 이제 광주에서도 재현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비교우위보다는 비교열위에 있는 요소가 많은 도시에게는 첨단 교통수단의 개통이 득보다는 실이 되기 마련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이런 변화를 개선할 구조적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이 같은 변화는 고착화되어 수도권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득보다 실정도가 아니라 쓰나미에 견줄 만한 변화 요소가 또 하나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수도권 규제완화 움직임이 그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이명박정부 들어 사실상 봇물이 터졌고 현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역대 정부의 수도권 규제 정책으로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충남의 수도권 기업 유치 실적이 2009년 282곳이었지만 2010년 200곳, 2011년 92곳, 2012년 69곳, 2013년 38곳으로 갈수록 줄었고 지난해에는 32곳으로 급감한 것만 봐도 수도권 규제가 지난 8년 동안 어느 만큼이나 풀렸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현 정부는 기요틴(단두대)라는 부담스러운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들이 조례로 정한 규제까지 풀라고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까지 없애라고 지목한 규제는 외지 건설업체들이 건설공사에 참여할 때 지역 건설업체와 일정 비율의 공동도급 혹은 하도급을 유지하도록 한 조례 및 지역의 발광 다이오드(LED) 업체 보호를 위해 입법한 조례, 지역 농·어촌 생산물의 우선적 소비를 위해 세운 로컬푸드관련 조례 등이 대표적이다. 이쯤 되면 지역의 산업과 농·어업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모두 없애고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 항복하라는 압력이나 다름없다. 비수도권은 오로지 수도권 대기업의 생존을 위해 복무하라는 소리인 셈이다. 지난 1월과 2월 비수도권의 시·도지사와 국회의원 등이 난데없이 잇따라 모여 성명서를 발표하는 집단행동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자체의 조례는 물론 해당 지역의 산업·기업 보호를 위한 것들로, 경제 분야 조례를 없애라는 요구는 아마도 이번 정부가 처음인 듯하다. 이런 요구는 침체에 시달리는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선 규제를 전방위적으로 없애야 국내외 글로벌 대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단체들의 논리에 정부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체들은 수도권 규제완화를 통해 국내외 투자를 유치하면 그 과실이 비수도권에도 퍼져나간다는 낙수 효과를 담은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낙수 효과는 지난 정부에서 보았듯이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다.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비수도권으로선 예전의 반대 논리에 더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한다 해도 정부와 대기업들이 귀를 기울일 것 같지 않다. 고속철도를 깔아 비수도권의 자본과 인재를 빨아들이는 것도 모자라서 비수도권의 안방까지 내놓으라는 태세로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피차 경제적 생존을 위한 절박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해 보인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비수도권은 정치적 행동도 고려해야 할 텐데, 정부에 맞서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부담스럽긴 하다. 대통령 단임제가 아닌 중임제였다면 정부가 이렇게까지 나올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게 하는 하수상한 시절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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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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