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20000호 특별취재] 대전 도시철 건설 등 앞장

65년간의 시대를 기록해 온 대전일보는 지령 20000만 호를 맞이 하기까지 지역민과 애환을 함께했다. 정론직필이라는 언론사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진실의 펜`을 놓지 않으며 지역발전을 견인했다. 충남대 의대 및 독립기념관 설립운동에 앞장 섰으며, 대전직할시 승격운동 주도, 21세기 충청권의 최대 화두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까지 대전·충청권 발전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이어왔다. `지역 발전에 앞장 선 대전일보 발자취(20선)`을 더듬어 봤다.

◇1. 충남대 의대 설립 운동 앞장

1966년 지역민의 염원이었던 충남대 의과대학 설립운동이 본격화됐다. 같은 해 8월 30일자에 대전일보 사장실에서 열린 추진위원회 출범 소식이 실렸다. 추진위는 의학도 양성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결의를 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문을 보냈다. 이듬해 충남대 의대 설립이 결실을 맺었다. 당시 남정섭 대전일보 사장이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2. 대전 제2공단 조성

1970년대 들어 충남지역에 대단위 공업단지 조성이 본격화됐다. 대전은 1968년 5월부터 대전 제1공단 조성 공사에 착수했다. 대전일보는 1970년 2월 13일자에 `대전-신탄진간 공업지구로 선정`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후 대전 제2공단 설립의 필요성에 대한 보도를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1973년 완공된 제2공단은 대전지역 산업생산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3. 대전 대덕연구도시 건설

대전일보는 1973년 6월 27일자에 새로운 연구학원 도시가 충남 대덕군 유성명, 탄동면, 구즉면 일원 700만 평에 건설될 정부의 발표를 실었다. 연구학원도시 입지 선정 배경에는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서울의 기존 대학 및 연구기관과 지방의 중화학공업기지가 유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점, 도시기반 조성 비용이 적게 드는 점 등을 주장했다.

◇4. 아산만 일대 산업기지 육성

1976년 1월 8일자에 건설부가 아산만 일대를 산업기지로 지정해 임해공업을 중점 육성하는 내용 등을 보도했다. 수도권 공장이 이곳으로 이전 돼 서울의 인구 분산에도 상당한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부산항의 10배가 넘는 내항이 생겨 공단으로서는 최적의 조건의 갖추게 되는 등 설립의 타당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5. 독립기념관 건립 앞장

정부는 1982년 독립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를 구성, 서울 한국의 집에서 발기대회를 가졌다. 대전일보는 1982년 8월 31일자에 `독립기념관 건립 성금 모금` 사고를 실었다. 사고는 독립기념관의 건립은 우리 자존을 지키는 결의라고 전달했다. 총 4억 6041만 원의 성금을 접수받아 전달함으로써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6. 대전 동서관통도로 개설

1984년 3월 22일자 1면 보도를 통해 대전역을 관통하는 동서로 개설을 적극 주장했다. 대전역 동부지역이 행정·상업·문화의 중심지인 중구와의 교통 단절로 낙후돼 역을 관통하는 도로가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대전역 이용객이 넘쳐나지만 동부주민의 불편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숙원사업인 동서관통도로는 2002년 11월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7. 대전직할시 승격운동 주도

1985년 7월부터 대전직할시 승격 운동에 앞장섰다. 7월 9일자 보도를 통해 광주와 시세가 비슷한 대전도 직할시로 승격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기사는 지역민의 큰 호응을 불러 범시민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대전일보는 직할시 승격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했으며, 범시민운동은 정부에 전달됐다. 1988년 12월 직할시 승격이 이뤄졌다.

◇8. 정부 대전청사 건립 주장

1987년 5월 4일자에 정부가 대전 근교에 정부 제3청사를 지어 11개 정부기관을 이전시킬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대전청사 건설의 시작이었다. 정부가 1991년 예산에 설계비 17억 원과 대비매입 계약금 13억 원 등 30억 원을 계상했으며, 1992년 착공해 1995년까지 모두 2100억 원을 들여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보도하는 등 청사 이전의 과정을 전했다.

◇9. 대전 동물원 조성 제안

대전동물원은 1989년 초 `캥커루가 보고싶어요`라는 한 초등학교 어린이의 간절한 호소 전화에서 비롯됐다. 전화를 접수한 즉시 3월 22일자로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에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줄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후 일선 학교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에게 큰 반향을 불렀다. 지속적인 보도 끝에 2002년 5월 5일 동물원이 문을 열었다.

◇10. 서대전 시민공원 조성

1989년 5월 16일자에 대전 서대전 4가의 나대지 개발에 시가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총 9500여 평의 땅이 10년 가까이 개발이 되지 않고 방치 돼 있는 데 이곳을 녹지대나 근린공원 등으로 개발하자고 주장했다. 대전일보는 광장조성을 위해 시민모금 운동을 이끌었다. 1990년 시는 본보 기획보도의 타당성을 인정해 서대전 시민공원 조성을 발표했다.

◇11. 둔산 문예공원 살려내다

1990년 6월 8일자부터 `가시화된 둔산 신시가지 난제는 무엇인가`라는 제하의 집중 기획물을 통해 둔산 신시가지 개발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다. 특히 회색도시가 될 것이라며 호수공원 부활을 적극 주장했다. 또한 생태공원을 둔산문예공원에 조성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시의 한 공무원은 "한밭수목원 조성 계획은 대전일보 헌신적 노력으로 성사됐다"고 회고했다.

◇12. 대전 도시철도 건설

2006년 3월 대전도시철도 1단계 구간이 완공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전일보 1990년 4월 2일자에 처음으로 도시철도 건설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건설의 당위성을 주장했고, 1단계 노선 착공 이후 재정 지원이 늦어져 공사가 지체되자 지속적으로 중앙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타지역과의 비교를 통해 비판의 내용도 잇따라 보도했다.

◇13. 청주 국제공항 건설 주장

1984년 4월 16일자에 정부가 수도권 새 국제공항을 청주-증평 사이인 충북 청원군 북일·북이면 일대에 건설키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공항 건설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 등 심층 시리즈를 실었다. 당시 수도권 신공항이 청주로 결정되기까지는 국회의원이었던 남재두 대전일보 회장의 막후 역할이 숨어있다.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며 정부를 설득한 것이다.

◇14. 대전·충남 중소기업청 부활 운동

1998년 정부 대전청사 준공과 함께 중소기업청 본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충남지방청이 폐지됐다. 지역에서는 중소기업인들의 불편과 불이익이 가중되고 있다며 지방청을 재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를 집중조명하며 여론을 불러일으켜 지방청 재설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002년 9월 19일자에 지방청이 개소했다는 보도를 했다.

◇15. 대전 장태산 휴양림 살리기

지역민의 휴식공간인 장태산 휴양림이 경영난으로 2001년 경매절차를 밟게 됐다. 대전일보는 장태산 휴양림이 개인업자에게 낙찰될 경우 엉뚱한 용도로 이용될 것이라며 장태산 살리기에 나섰다. 시는 대책마련에 나섰다. 2002년 2월 7일자에 대전시장이 시 차원에서 경매참여 등 다양한 방법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는 보도를 게재했다.

◇16. 충청권 최대 현안 행정도시 건설

행정도시 건설은 21세기 충청권의 최대 화두이다. 대전일보는 이 사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고비마다 국가균형발전과 경쟁력 강화, 지역의 권익증대라는 원칙 아래 고민하고 노력했다. 2003년 2월 6일자에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 건설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행정도시의 정상적인 건설을 위해 지속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17. 나노팹센터 대전유치 앞장

2002년 5월 13일자 기사로 나노팹 센터 유치를 놓고 대덕연구단지 컨소시엄과 성균관대 컨소시엄 두곳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정치적 변수`에 의해 입지가 결정될 우려가 크다는 점을 제기했다. 대전일보 주장은 대전시와 충남, 충북도, 카이스트가 나노팹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손을 잡게 했다. 지속적 보도 이후 유치기관으로 카이스트를 최종 확정했다.

◇18. 리포 수목원을 지키자

태안 천리포 수목원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수목원이자 식물 종 보유 측면에서 최대의 민간 수목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2002년 민병갈 이사장이 세상을 떠난 후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2년 8월부터 시리즈 기사를 통해 천리포 수목원을 지키자는 운동을 벌였다. 운영비 충당 등 사회 각계의 다양한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야 한다고 보도했다.

◇19. 대전 3대 하천 살리기

2003년 7월 대전의 상징이자 뿌리인 대전천 복원을 위한 특별 기획 `대전천 푸르게 복원하자`를 시작했다. 구체적인 복원 로드맵을 제시했고, 현재를 보며 내일을 생각하는 대전일보의 면모를 지역민에게 보여줬다. 3대 하천 살리기 사업은 오는 2020년 완공 될 예정으로 홍수, 가뭄 등 치수상의 안전성이 확보되고 하천에는 1급수가 흐르게 될 것이다.

◇20. 이응노미술관 건립 제안

고암 이응노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04년 그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시리즈를 내보냈고, 이는 이응노 미술관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고암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올랐지만 동백림 사건으로 고국에서는 외면당했다. 이후 시가 이응노 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마침내 2007년 5월 이응노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강대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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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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