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적 음악관 부정… 예술로 발전

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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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384-322·사진)는 철학 뿐만 아니라 수학,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해부학, 박물학, 논리학, 정치학, 심리학, 시학, 미학, 수사학, 신학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긴 학자로 기원전 384년 마케도니아의 스타기로스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367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20년을 보내며 플라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플라톤의 제자임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승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였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보다 체계적인 현실주의자였다.

또한 미(美)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진리이며, 음악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 하나의 초월적인 세계이자 완벽한 이상의 세계라고 주장한 플라톤과 달리,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을 만드는 행위는 개별적인 인간의 행위라고 주장했다. 즉 우주론적 음악관과 지상의 음악은 천상의 음악을 원형으로 한다는 플라톤의 이데아적이고 형이상학적 음악관을 부정하고 음악을 우주의 소리가 아닌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는 목소리와 음, 인간의 정서에 호소하는 `예술`로 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음악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실제로 기원전 4세기쯤 `리르`라는 현악기에 네 개의 줄을 첨가한 연주자를 처형한 기록이 남아있기도 한다. 음악교육은 일종의 정신교육으로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적절히 시행하면 바람직한 성격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점에서 교육적인 목적으로서의 음악의 기능과 역할에 있어서 생각이 비슷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이 어떤 특정한 영혼의 상태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한 영혼의 상태를 모방한 음악을 들으면 실제로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극기, 인내, 절제, 용기를 모방한 음악을 권장하였다. 특히, 교육적인 목적으로는 비교적 도덕적인 음악을 권하였다. 때로는 순전히 즐거움을 위한 열정적인 음악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음악의 사회적, 교육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면서 음악을 윤리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경험적인 것으로 구분하였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장단조 체계가 아닌 도리아, 믹소리디아, 프리지아와 같은 선법들이 사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의 선법이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도리아는 온화하고 안정적이며, 믹소리디아는 침울한 성격을 야기시키는 음악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사실상 일관성은 없었다. 왜냐하면 또 다른 학자들은 도리아가 호전적이며 남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들이 어떤 근거와 논리로 반음과 온음을 특정적으로 연속해서 배열한 선법에서 성격과 특징을 구분해 내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음악관은 플라톤의 음악관보다 진보적이고 현실적이었으며, 예술 창조를 하나의 지적인 행위로 보았다. 창작 행위는 인간의 인식 활동 중 하나이며 그 속에 어떤 일정한 법칙이 내재해 있을 뿐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창작 행위는 인간의 지각 능력 밖에 있다는 우주론적 형이상학이 아니라 올바른 통일성과 조화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는 지적 행위라는 인식의 변화인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였다. 이때부터 음악은 형이상학이 아닌 물리학, 음향학, 심리학 등의 영역으로 세부적으로 연구되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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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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