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모튼 틸덤 감독 이미테이션 게임

지난 2013년 12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은 반 세기 전 동성애를 이유로 처벌받은 한 천재 수학자를 특별 사면했다.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과 수 만명의 시민들이 그의 사면을 여왕에게 끈질기게 요청했고, 결국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의 숨겨진 전쟁영웅이자 인공지능의 개념을 만들어낸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앨런 튜링은 24시간 마다 암호체계가 바뀌는 탓에 해독불가라고 여겨졌던 독일군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풀어내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전쟁영웅이었다. 하지만 은밀하게 진행된 작전이 외부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은 영국정부 때문에 이 사실은 철저히 은폐됐고, 오히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이후 자살로 쓸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한 천재의 슬프고 놀라운 인생을 호들갑스럽지 않은 담담한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영화는 1951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이상한 도난 사건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도둑은 들었지만 사라진 것이 없다며 내쫓는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런 모습에서 그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된 노크 형사(로리 키니어)는 그를 소련의 스파이로 의심한다. 하지만 수사결과 드러난 그의 비밀은 동성애자라는 사실. 무엇인가 더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던 노크 형사는 다시 한번 조사실을 찾고, 튜링 교수는 집중하라며 자신의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매 순간 3명의 영국군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제 2차 세계대전. 육상은 물론 해상에서도 어려운 전황이 이어지자 영국 정부는 반전을 위한 카드를 준비한다. 해독불가라고 여겨지던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수학자, 체스 챔피언, 언어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을 모아 비밀 조직을 구성한 것이다. 기계의 힘을 빌려 24시간 마다 암호체계를 바꾸는 에니그마의 설정을 사람이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설상가상 암호해독반을 이끄는 외골수 수학천재 앨런 튜링은 동료들과 사사건건 갈등만 일으키고, 엄청난 거액을 쏟아 부은 거대기계 `크리스토퍼`로 인해 상부와의 마찰도 끊이질 않는다. 이 과정에서 이중 스파이로 몰리는 등 위기에 빠지지만 자신의 천재성과 고뇌, 외로움까지 감싸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성 수학자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의 도움으로 결국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내는데 성공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미테이션 게임`과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특히 잘 알려진 인물의 일생을 다룬 영화는 분명 매력적인 소재이지만 부담도 크다. 그의 일생 자체가 `스포일러`인 만큼 관객 대부분이 영화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알고 영화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만약 `이미테이션 게임`이 튜링의 업적을 단순히 나열하는 식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갔다면 영화는 그저 한 천재의 성공스토리를 담아낸 지루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튜링이 암호 해석을 접한 유년기와 본격적으로 활약한 1940년대, 종전 이후 동성애 혐의로 체포된 1950년대를 매끄럽게 오가며 전기영화가 지닐 수 있는 단조로움에서 영리하게 벗어났다. 암호해독반 동료들과 벌어지는 개인간의 갈등은 물론,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빠른 전개로 그려내면서 암호 해독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물의 희열을 극적으로 이끌어냈고, 앨런 튜링의 업적을 관객들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마무리 지은 덕에 오히려 그의 위대함을 부각시키는 각본과 연출의 미덕을 보여준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미테이션 게임`이 각색상을 차지할 수 있던 요인도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또한 앨런 튜링의 면모와 함께 그의 성격적 결함과 남들과는 다른 성정체성으로 인해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을 균형 있게 담아내고 있는 점도 전쟁 영웅을 다룬 다른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매력이다. 이와 함께 앨런 튜링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탁월한 연기력은 관객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전작인 `셜록`, `호킹` 등에서 비범한 천재 캐릭터를 소화한 컴버배치는 이 작품에서도 철저한 분석을 거친 조율된 연기로 짧은 인생을 살다 간 비운의 천재를 스크린에서 부활시켰다. 오정현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정현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