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20000호 특별취재] 1951년 시작으로 총 22차례 발행

대전일보가 발행한 시기별 주요 호외들
대전일보가 발행한 시기별 주요 호외들
"호외요, 호외"

역전 광장이나 버스터미널 등에서 이 같은 외침과 함께 뿌려지던 신문지 `호외`. 매일 같은 시간에 발행되는 신문이 아닌 특정 사건이나 사안이 발생해 급히 독자들에게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발행하는 신문을 `호외`라고 한다. 지령에 포함되지 않은 신문으로 특별한 사건의 내용만 다루게 되는 게 보편적인 호외다.

신문이라는 미디어의 특성상 호외는 빼놓을 수 없는 신문의 꽃이자 독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사명감으로도 대변된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대부분의 신문사에서 호외발행을 지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회에서 호외가 갖는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65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전일보도 창간 이후 지난 1951년 6월 30일 첫 호외를 시작으로 2009년까지 22번의 호외를 발행했다. 대전일보의 호외는 보통 1만부에서 많게는 10만부까지 발행됐으며 대전역과 서대전역, 고속버스터미널, 서부고속버스터미널 등에 뿌려졌다.

호외를 발행하게 되면 전 대전일보 직원 모두 나서 직접 호외를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호외의 내용만으로도 대전일보 65년의 역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아우를 수 있다. 역사와 함께 호흡하며 충청민의 민심을 대변해온 대전일보가 발행한 호외에 대해 알아본다.

◇1951년부터 2009년까지 22번 호외 발행=대전일보가 창간된 뒤 최초로 발행한 호외는 1951년 6월 30일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정전교섭 개시지령이다. 이후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가 대전일보의 2번째 호외다.

이후 1964년 5월 9일 정일권 내각발표,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다음날인 10월 28일 김재규의 계획적인 범행 등이 대전일보의 호외에 담겨졌다.

1983년에는 2건의 호외가 발행됐다. 9월 1일 KAL기 사할린에 강제착륙 기사가 호외로 발행된 데 이어 10월 9일에는 버마 국립묘지 폭발사고가 호외 신문에 싣렸다.

1985년에도 대전일보의 호외는 발행됐다. 2월 18일 개각발표를 호외로 발행한 데 이어 8월 25일에는 중공군용기의 이리(현 익산)불시착의 내용을 호외에 담았다.

1986년은 총 3편의 호외가 발행됐다. 2월 21일 중고군용기 1대 귀순을 시작으로 3월 18일 신상옥, 최은희 북한탈출, 9월 28일 서울아시안게임 중간속보가 호외로 충청민에게 전달됐다.

1987년은 대전일보의 호외를 가장 많이 발행한 해로 기억된다. 1987년 7월 13일 개각발표에 이어 8월 29일 오대양사건이 대전일보 호외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다. 다음날이 8월 30일 대전일보는 호외 2면을 발행해 오대양사건의 전초를 밝힌다. 같은해 11월 29일에는 KAL기 미얀마 상공서 실종이라는 제목의 호외가 발행되고 12월 17일에는 노태우 대통령 당선이 호외로 알려지게 된다. 이후 20여년이 지난 2008년 5월 4일 보령 해수범람 참사가 대전일보의 21번째 호외로 발행됐으며 마지막 호외는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기록돼 있다.

◇첫번째 호외 트루먼 대통령 정전교섭 개시지령=1950년 한국전쟁 중 창간된 대전일보는 전쟁의 실상을 전하는 전국민의 눈과 귀 역할을 수행했다. 전쟁의 참상과 더불어 진행정도, 국군의 승전보 등이 대전일보를 통해 전해졌다. 그 시기에 한국전쟁을 두고 세계 각국의 관심도와 정치적인 상황도 대전일보 지면은 전하고 있다. 그런 시기적 배경에 1951년 6월 30일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전쟁 정전교섭을 개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은 전 국민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대전일보는 호외를 발행해 트루먼대통령의 정전교섭 개시지령을 전했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날인 7월 1일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해 정전협상에 관한 회의를 이어갔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그리고 김재규의 총격=1979년 10월 26일 저녁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지게 된다. 당시 석간이었던 대전일보는 이 사실을 다음날인 27일 아침 호외로 알리게 된다. 또 28일에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계획된 범행이었다는 사실도 호외를 통해 전달된다.

◇국가적 충격 버마 국립묘지 폭발사고=1983년은 해외에서 벌어진 참사가 2건이나 호외로 발행됐다. 특히 그 중에서 버마 국립묘지 폭발사고는 충격을 감출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미얀마의 수도 양곤(당시 랭군)에 위치한 아웅산묘소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할 계획으로 북한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폭파사건은 대통령 공식 수행원과 수행 보도진 17명이 죽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개국을 순방중이었으며, 첫 방문지인 버마에서 발생한 일이다. 대전일보는 사건 발생 직후 호외를 발행해 이 사실을 알리고 이후 지속 보도를 통해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사건의 전후를 밝혔다.

◇오대양 사건 세상에 알려지다=대전일보 대특종으로 기록된 오대양 사건도 호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단순한 폭행사건으로 비춰졌던 오대양 사건은 당시 "한 집안 자녀 7명을 회사에 입사시키고, 부모로부터 5억원을 뜯어낸 뒤 변제를 요구하는 부모들을 감금, 폭행한 회사직원 11명이 경찰에 구속됐다"는 내용의 사실보도이후 지속적인 취재와 집중보도를 통해 오대양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다. 특히 1987년 8월 29일 행적을 감췄던 오대양 대표 박순자와 직원, 학사소속 학생 등 32명이 경기도 용인군 오대양 공장 식당 천정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충격을 금치 못할 사실이었다. 대전일보는 곧바로 이날 호외를 발행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다음날이 30일 2개면을 호외로 발행, 오대양 사건의 전말과 당시 상황을 전국민에게 전달했다.

◇대전일보의 가장 최근 호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대전일보가 가장 최근에 발행한 호외는 2009년 5월 23일 토요일에 발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이다. 지난 박정희 대통령 서거 호외와는 다른 충격을 안겨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당시 대전일보에 근무했던 기자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이날 평화로웠던 충청에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전직 대통령이 투신을 했다는 소식은 반드시 전달해야 할 사건이었다. 이에 대전일보는 발 빠르게 호외를 발행해 사실을 알렸고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사실과 유언 등을 호외에 담았다.

이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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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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