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연휴의 끝 무렵에 모처럼 가족들과 가까운 계룡산을 찾았다. 춥지 않은 날씨에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모인 가족 단위 등산객들로 등산로는 가득 차 있었다.

해마다 계룡산을 찾지만 언제부턴가 동학사가 우리 가족의 계룡산 등산 종착지가 됐다. 등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거리다. 그 위쪽으로는 험난한 코스가 이어지기 때문에 가볍게 산책 삼아 동학사에서 약수 한 사발 마시고 하산하는 것이다.

계룡산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게으른 초보 등산 가족을 맞아준다. 하지만 종착지인 동학사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낯선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대웅전 앞 오른쪽으로 새로운 건물 하나가 공사 중이었다. 명절 연휴를 맞아 멈춰 있는 공사현장의 모습은 오래된 고찰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조감도를 보니 1층은 콘크리트구조에 2층은 목구조가 얹혀져 있는 형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학사에서 제대로 옛 모습을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은 대웅전뿐인 것 같다. 나머지는 콘크리트구조와 목구조가 섞여 있거나 아예 전체가 목조건축물 모습을 한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필자의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오던 동학사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동학사만의 모습은 아니다. 전국의 많은 사찰들이 이런 모습으로 변해 있거나 변해가고 있다. 우리가 전통건축물을 가장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오래된 사찰들인데 이렇게 망가져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건축사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화재 관리하는 수준이 이 정도니 우리 후손들은 아마도 제대로 된 전통건축물을 사진 속에서나 보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우리 국보 1호인 숭례문 보수 과정도 그렇게 탈이 많았는데 나머지 문화재들은 어떨지 상상하기도 싫다.

한 나라의 역사를 체험케 하는 가장 직접적인 것이 전통건축물이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한쪽에서는 관광 한국을 외쳐대면서도 한쪽에서는 가장 중요한 우리 전통건축물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 현실이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고, 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아무리 외쳐대면 뭐할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소중한 유산들을 지금부터라도 잘 지켜내지 않으면 외국인이나 우리 후손들에게 대한민국은 걸그룹 보이그룹의 나라로밖에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조한묵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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