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산·자살률 OECD 최악 인간 삶의 질 가늠 잣대 여야, 소모적인 논쟁 전 국민적 합의 도출 노력을 "

요즘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 등을 둘러싸고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선거 공약 과정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이루어 내겠다`고 하였다. 과연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할까? 이는 증세 없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 정도의 복지만을 구현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증세 없이 구현할 수 있는 복지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세금을 덜 내고 복지 혜택도 덜 받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과거 가족이 사회 안전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국가는 일부 보충적 기능만 담당하던 시대나, 혹은 고용률이 높아 소득 보장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 적거나 노동인구가 많고 중산층이 두터우며 양극화 정도가 낮을 때는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개인적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는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 여당 대표는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과잉 복지의 위험성을 언급하였다. 여당 대표의 말이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혜택 수준이 과잉공급 수준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현 상황에서 복지 과잉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낮은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지금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복지의 수준을 어디까지로 보아야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개인적 견해로는, 국민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인 출산율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악의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증세 없이 국민들의 존엄성을 지킬 만큼의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증세 구조가 전제된다면 얼마든지 증세의 논의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증세와 복지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우선적이고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증세와 복지의 문제는 복지국가 논의가 시작된 이래 오랫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이 논의되어온 이슈이다. 어느 제도와 방식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을 만큼 복지국가의 유형이나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는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서로 별개라고 오해할 만큼 언론에서도 이 둘이 배치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사실은 이 둘은 하나의 완성된 정책에 한 부분일 수 있으며, 사안에 따라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상충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이 둘 중 어느 것이 적절하냐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근본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고 공약만 갖고 왈가왈부해왔기 때문에 보다 진지하게 충분히 우리 사회가 지향할 가치에 대한 합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증세냐 아니냐,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가치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복지 정책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현실만을 따져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이길 원하며, 어떤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합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야는 먼저 대한민국이 어떠한 가치, 어떠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이전보다 더 크게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복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지 정책의 개별 사안에 따라 여야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대결하며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 전에, 국민들이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복지 수준에 대한 논의가 정부의 지도층만이 아닌 모든 국민들의 참여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손의성 배재대 복지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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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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