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약의 중심에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온 상징적 공간, 바로 한약방이다. 한약사는 물론이고 한약방이라는 이름마저도 잊혀지고 있는데 1951년에 `한의사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이다. 더욱이 의약(醫藥)의 분리와 전문화로 인해 더 이상 한약사를 선발하지 않기 때문에 한약방을 보기란 쉽지 않다.

대구, 평양과 함께 강경은 조선 말기의 3대 시장으로 일컬어질 만큼 번성했던 곳이다. 특히 강경 구시장인 하시장의 골목에 위치한 상가들은 호황을 누렸는데, `연수당건재한약방`도 시장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로 들끓었다. 1923년에 건축 후 `남일당한약방`으로 운영하였는데, 1933년 동아일보 기사에 `경성남대문밧게서 제일큰약방이라고 이르던 약방인만큼…`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당시에 지역에서 지명도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한약방은 이층으로 된 한옥 상가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규모가 제법 크다. 1층은 상업시설을 갖추고 2층은 주택시설을 두었으니 오늘날의 주상복합형 구조라 생각하면 된다. 또한 한식 건물이지만 1층에 차양지붕, 지붕 장식재, 변화된 툇마루 등은 일본 건축의 분위기를 띤다. 따라서 전통적인 한식 구조에 상가의 기능을 더해 근대기 한옥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한약방은 현재 후손들의 조부인 故 유진순 선생이 활동한 곳이다. 그는 한학에 매진하다가 1953년 정부의 약종상 면허제도 시행 이후로 약종상 면허를 취득하여 한약방을 운영하였다. 남일당한약방은 이후 `연수당건재한약방`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운영되었다. 1980년대에 한약도매상 제도가 생기기 전 한약방에서는 한약재를 판매하는 업무를 병행하였는데 이러한 형태의 한약방을 `건재한약방(乾材韓藥房)`이라 일컬었다. 시장이 역 앞으로 옮겨 간 후 옛 이름인 남일당한약방은 토박이들도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현재는 후손이 관리하고 있으며, 문학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2002년 2월에 연수당건재한약방은 `강경 구(舊) 연수당건재한약방`이라는 명칭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제10호)되었다. 국내에서 근대의 역사건축물이 등록된 것으로는 처음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여 건의 의료시설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한의학과 관련된 의료행위가 이루어진 의료시설은 `강경 구 연수당건재한약방`이 유일하다. 포구도시로서 번성했던 강경의 역사와 한약방을 드나들었을 사람들의 체취가 근대의 골목길 한가운데 스며들어 있으니, 방문해 보기를 권해 본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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