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택리지 강제윤 지음·호미·332쪽·1만7000원

"사람에게만 피가 흐르랴. 섬들도 모두 크고 작은 핏줄로 이어진 혈육지간이다."

이제 곧 봄이 돌아온다. 가장 먼저 봄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곳, 남도에는 올해도 찬란하게 꽃들이 만개할 것이다. 남도가 `남도`다운 이유는 아름다운 섬들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봄과 더 친해지기 위해 남도의 섬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마침 남도의 섬을 소개하는 길라잡이 책이 나왔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지 않는 섬을 정리한 강제윤 시인의 남도 섬 여행기 `섬 택리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책은 본격적인 지리서는 아니다. 바다와 섬이라는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을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살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택리지가 지난 수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놓치고 또 잃어버린 천금 같은 조각을 찾아 맞춰 온전한 우리나라 택리지를 완성하는데 힘 을 보태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섬 여행자로서는 거의 독보적인 이력을 쌓아온 세월에 섬을 헤아리는 그 안목은 깊고 밝다. 시인이 던지는 인문학적 사유의 그물이 유형과 무형의 보물을 가리지 않고, 또 시공과 경계에 걸림이 없이 펼쳐진다.

섬에는 유형의 보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형의 보물들이 더 많다. 뭍을 그리워하는 섬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가거도 할머니의 민요, 제주도 `이어도 사나`의 흑산도 버전이랄 수 있는 흑산도 해녀 할머니가 불러주는 `진리 뱃노래` 등이 그 무형의 보물들이다. 또 시인이 전해 주는 흑산도 진리 당집의 피리 부는 소년과 처녀귀신의 사랑 이야기, 비구니와 비구의 사랑이 놓은 애틋한 노둣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섬이야말로 이야기의 보고라는 시인의 말에 절로 고개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시인은 섬에 펼쳐진 보물들만을 바라 보진 않는다. 곳곳의 섬에서 목도한 개발의 망령에 대한 안타까움도 잊지 않는다. 방조제나 조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파괴되는 갯벌과 문화유산에 대한 마음이 그러하다. 해안도로를 내기 위해 어부림(魚付林: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조성된 숲)을 파괴하고 천 년 된 당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체육공원이 들어서는 것을 보는 마음이 그러하다. 뭍사람들이나 섬사람들 스스로 섬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현실에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은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다만 섬에서 만난 풍경을 찍고 그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생생하게 기록해 전할 따름이다. 책 곳곳에 숨겨진 섬들의 비경은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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