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문재인 의원발 호남총리론 역풍이 불고 있다. 그가 지난 26일 한 라디오에서 이완구 새 총리 내정자를 비트는 투로 언급하면서 "호남 인사를 발탁했어야 했다"고 뱉을 당시엔 말이 씨가 될지 몰랐을 수 있다. 문 의원은 다음 날 "충청분들에게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의 말이 시위를 떠난 화살이 돼 날아간 뒤였다.

유력 정치인의 가장 큰 무기는 언어 화살이다. 사회·정치적 현안을 제때 포착해 정치적 반대그룹을 겨냥해 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자산이기도 하다. 후폭풍을 일으키고 말았지만 문 의원으로선 호남총리론 화살을 당길 적기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그렇지 않아도 당권 경쟁이 치열한 마당에 호남총리론 화살은 비용 대비 효용성 측면에서 남는 장사일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 의원이 시위에 메겨 날린 호남총리론 화살은 오해의 소지가 적지 않다. 우선 지역감정을 건드려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냄새가 풍긴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점에 대해선 문 의원 자신이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충청총리 후보자가 내정된 후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 문 의원은 살짝 이 내정자의 정치적 행태에 대해 인상비평을 곁들이는 화법을 구사했다. 그럼에도, 호남총리론에 방점을 찍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충청정서를 교란시키는 원인 제공을 하고 말았다. 지금 그는 그 비용을 치르고 있다.

요컨대 호남총리론은 필연적으로 충청총리와 충돌하는 구조이고 구도이다. 또한 호남총리론을 특정했다는 사실은 충청총리에 대한 거부감으로 오인케 하는 심증을 굳힌다. 그리고 해당 발언 당사자가 문 의원이기 때문에 논란이 쉬이 잦아들기는커녕 증폭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정리된다.

호남총리론이 정치적으로 내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논리도 살펴봐야 한다. 충청총리를 인식하는 지역의 집단정서는 조금 독특하고 유별나다. 문 의원이 간과했다면 간과한 대목이다. 첫째 충청 사람들에게 총리는 정치적으로 최대치였다. 거꾸로 말해 대통령 권력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의 상실감 내지는 열패감 비슷한 것에 비유될 수 있다. 호남총리론은 그런 무의식 아닌 무의식을 흔들어 깨운 측면이 있다. 잊고 있으면 감내되지만 의식의 경계로 넘어오는 통로가 생기는 순간 내압은 외부를 향한 동력원이 된다. 지역정서가 위아래로 분출할 것처럼 대류활동을 개시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역대 정부에서 배출된 충청총리 점유율이다. 정부 수립 후 현 정홍원 총리는 42대에 해당한다. 이 내정자가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를 받게 되면 43대 총리가 된다. 이 내정자를 포함해 충청총리에 이름을 올린 인사는 통틀어 5명이다. 점유율로 환산하면 15%쯤 나온다. 노태우 정부 이후 매 정부에서 1명씩 배출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이완구 총리`가 그 반열에 오르기 직전에 있다. 출신지를 가르는 건 아니나 충청총리는 상대적으로 희소가치가 크다는 게 특징이다. 호남총리론은 바로 이 지점을 때림으로써 오조준 역효과를 낳았다.

셋째 문 의원은 지난 2002년 12월 16대 대선 기억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여야 대선 후보는 노무현 대 이회창 경합 구도였다. 이 후보는 충남 예산 연고권자로서 심정적인 충청 출신 후보였음에도 불구, 충청 유권자들은 노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그해 노 후보는 이 후보를 57만여 표 차로 이겼는데 특히 대전 10만 표, 충남 10만 표, 충북 5만 표 등 25만 표가 충청권에서 쏟아졌다. 노 후보의 충청권 신행정수도 공약 효과였다 해도 연고권 후보 대신 정책에 표를 던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역사가 있음에도, 노 정부의 상징적 인물인 문 의원이 호남총리론 화살을 충청권에 겨눈 건 불찰이었다.

정치인에게 대중의 지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괜한 일로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 그만큼 입지가 좁아진다. 그렇다면 문 의원의 호남총리론 언사도 향후 큰 선거 때 자가복제된 모습을 드러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호남총리론의 얄궂은 두 얼굴이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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