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 겪어온 40년 종교인 인생 억울함에도 성숙한 시선 필요 남탓보단 자기반성 시간 중요 절망 극복해 전화위복 계기로

천주교 신부로 종교계에 몸을 담기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다. 강산이 네 번씩이나 바뀌는 사이 함께 신부가 된 동료들 가운데는 세상을 떠난 사람도 여럿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 친구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은 세상을 너무 일찍 떠났다며 아쉬워하는 적이 많다. 주위 지인들과 떠난 이들을 기억 속에 떠올리며 그들이 남기고 떠난 정과 그리움을 이야기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죽은 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나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나누는 때가 있을까`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필자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와 순간적으로 기분이 곤혹스러운 경우가 있다. 사람들에게 이렇다 할 내 삶의 아름다움을 보이지 못하고 살아온 40년인 것 같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했다는 `불혹(不惑)`이라는 말이 있다. 40년을 살았으면 어지간해서 흔들리지 않는 `줏대`가 생긴다는 뜻이다. 강산이 네 번 바뀌었으니 이제는 철들 때가 되었다는 뜻 같기도 하다. 이렇듯이 40이란 숫자의 의미는 성경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방의 길을 걸어가면서 고난과 유혹의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고 나서야 약속의 땅에 도달했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명한 선지자들과 예수님도 40일 동안 단식을 하며 광야의 고독을 견디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예수님을 비롯한 그들이 견뎌낸 40년이란 시간을 넘긴 나의 모습은 어떠할지에 대해 말이다. 이제 그만큼 철든 모습을 갖췄을까. 남을 이해하고 베풀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일까.

만나고 어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혹 마음에 들지 않는 처사를 대하게 될 때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면 아직 미혹(迷惑)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남기는 여전한 철부지라는 것이다.

일전에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 S신부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S신부의 말에 따르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을 만났는데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세상을 조금 더 알게 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이다. 이어 S신부는 필자에게 다음의 말을 덧붙여 들려줬다. 누명(陋名)이란 누명(累名)이라면서, 손가락질을 당할 때마다 유명해지는 만큼 억울함을 당할수록 얻어낼 수 있는 좋은 것도 있다는 것이다. 전화위복이 그런 걸까.

종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다.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는 위의 S신부가 말해줬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한다. S신부는 필자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훨씬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이만 많았을 뿐이지 아직도 마음속에 품어줘야 할 것이 많아 부끄러웠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억울함을 당할 때가 있다. 그 억울함을 가장 많이 당한 분을 바라보면서,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절망을 딛고 일어설 때 `구원`에 이른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 이름을 따서 자칭하는 그들은 바로 `크리스천들`이다. 그래서인지 억울함 속에서도 남을 탓하지 않는 사람들이라야 자칭 `크리스천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크리스천의 길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음과 같은 반성을 해본다. 40년 살아온 필자는 지금 `크리스천`이라 자칭할 만큼 그 깨달음에 이르렀는가. 이른바 성직자라면서 늘 설교하듯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었던 40년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또 그런 식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습관화되다 보니 가르치듯 남 탓만을 일삼아서 살지 않았을까.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 실천해야 할 것이 넘쳐난다. 때문에 이제 조금 철이 드는 생각을 해본다. "이젠 나 자신이 가르침을 받아야 할 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배울 걸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이다.

윤종관 천주교 하부내포성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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