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한 경쟁 시대다. 이 시대에 보장받은 직장, 직종은 없는 듯하다. 잘나가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부터 안정된 직장으로 여겨졌던 소위 `철밥통` 공무원까지 밥그릇을 걱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건축사라는 직업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해마다 수주 물량은 감소하고 건축사사무소의 수는 포화 상태다. 대전만 해도 300곳이 훨씬 넘는다.

이 어려운 시기에 대한건축사협회를 이끌 회장을 뽑는 온라인 투표가 며칠 전에 있었다. 모든 회원이 참가하는 직선제 투표였다. 다섯 명의 후보가 내세운 공약들이 연일 스마트폰과 이메일을 달궜다. 공약의 대부분 내용들은 예상한 대로 이 시대의 공통적인 관심사인 밥그릇에 관한 내용이 주가 되었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는 다른 단체들의 선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대선 때도 경제 살리기가 주된 이슈였으니 두말하면 무엇하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면 적어도 먹고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라이면 참 좋으련만 그게 여러 모로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학 다닐 때는 졸업 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지금과는 달랐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보다 좋은 공간과 형태를 가진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척박한 건축 환경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내 건축적인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등의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번민하며 노력했던 생각이 난다.

이상만 좇을 수 없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밥그릇만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다음과 같은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첫째,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확충하겠습니다. 둘째, 건축사들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겠습니다. 셋째, 국민의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강연이나 세미나의 기회를 늘리겠습니다. 넷째, 건축문화 발전과 건축주와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건축법 연구와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등등 이런 공약을 내걸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밥의 양은 많이 늘지 않겠지만, 윤기가 흐르는 질 좋은 밥이 그릇에 담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다가오는 3월에는 대전광역시건축사회 회장 선거가 있다. 어떤 후보들이 어떤 공약을 내걸고 경쟁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조한묵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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