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비롯한 각종 의례 때는 물론 친목을 도모할 때 일상 음료로서 즐겨 찾는 친구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술`이다. 선조들은 절기에 따라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담근 술을 곁들여 시(詩)와 풍류(風流)에 취하길 즐겼는데, 맛난 술이 없었다면 예술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농사일의 능률을 위해 술이 필요했던 것은 선현들도 마찬가지였을 터, 15세기 농서 `금양잡록`에서는 `호미질(일하러) 나갈 때에 술 단지를 잊지 마라(가져가라)`고 하여 애주가들이 고맙게 여길 만한 당부까지 하고 있다. 조선 중엽 문헌에 전하는 술만 200종이 훨씬 넘었다. 조선 후기에는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家傳秘法)에 따라 술을 만들어 각종 의례에 사용하였고, 이들 명주가 알려지면서 전통주의 전성기를 이루기도 하였다.

전통사회에서 술은 감(甘), 산(酸), 신(辛), 고(苦), 지(旨), 삽(澁), 청량미(淸凉味) 등과 색택(色澤), 향취, 침강도, 혼탁도가 잘 어우러진 것을 최고로 꼽았다. 전통술이 지니고 있는 향취의 비법은 곡류에 자연적으로 곰팡이를 번식시킨 누룩과 발효 방법에 있다. 누룩은 술의 향기와 알코올 도수, 그리고 색깔을 결정짓는다. `술은 한 사람의 정성을 마시는 것`이라고 할 만큼 매 과정마다 정성이 들어가지만, 술 빚는 이가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공정도 바로 누룩의 발효이다.

1900년대 초부터 우리네 음주문화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술을 빚으면 세금을 부과하고, 양조 허가를 받은 사람 외에는 술을 만들지 못하도록 일제가 시행한 주세법(酒稅法)의 등장 때문이다. 많은 지역과 집안에서 가양주(家釀酒)를 몰래 빚기도 하였으나 이마저도 밀주 제조에 대한 단속(1916년)이 강화되어 수백 종에 달했던 전통주 빚는 비법은 잊혀져 갔다. 오늘날 술이 약주·탁주·소주로 획일화된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집안과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전통주는 오늘날 문배주(86-1호), 면천두견주(86-2호), 경주교동법주(86-3호) 등 중요무형문화재와 송순주(대전시무형문화재 제9호), 계룡백일주(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7호)를 비롯한 24개의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장인들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미식가들이 맛좋은 음식을 찾아다니듯 전통술을 즐겨 찾는 사람이 늘어나 술 빚는 비법과 정성이 고스란히 전승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음 세대도 제대로 된 우리의 전통술 맛을 만끽해야 하니 말이다. 글 쓰는 내내 온갖 전통주의 달콤한 향취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으니 아무래도 오늘은 술 뚜껑을 열어야겠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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