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의 한 백화점에서 여성 고객이 남자 직원을 폭행하는 등 행패를 부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서열화된 위계사회에서 이 정도의 사건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은 지 오래다.

지난 한 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던 소위 갑의 횡포만도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남양유업 사태가 잊혀지기도 전에 `라면 상무`, 28사단 의무대의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 그리고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입주민의 계속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디지 못하여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사건 등이 있었고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그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사건의 공통점은 강자의 위치에 있는 자가 약자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흔히 정글에 비유하곤 하지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맹수는 배가 부르면 절대로 사냥하지도 사냥감을 괴롭히지도 않는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냥을 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우리 사회는 야생동물의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야만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위계가 필요하다. 다만 인간사회의 위계와 질서는 사회적인 규범과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인간성에 의해서 유지되어야 하며 이를 우리는 문명사회, 민주화된 사회라 부른다. 이미 실패한 제도로 판명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국가일수록 갑을 관계에서 일그러진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다.

건축계의 한 가지 사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갑과 을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각종 용역계약서에 발주자는 `갑`으로 용역수행자는 `을`로 표기하는 것은 시작부터 갑을 관계를 각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전남지방의 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공사비 55억 원짜리 설계를 수주한 한 건축사는 계속되는 설계변경으로 공사비가 1차 99억, 2차 165억 원으로 증가하였음에도 2차 증가분에 대한 설계용역비 지급을 거절하는 발주처를 상대로 2년 여의 소송 끝에 일부를 보전받은 사건은 수많은 사례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과업지시서상에 `계약자는 설계용역비 증가사유가 발생되더라도 증액분에 대한 설계비는 청구할 수 없으며, 또한 감액사유가 발생되면 설계용역 계약금액은 감한다`라는 독소조항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불공정거래방지법을 제정한다 하나 시기를 기약할 수 없다. 제도를 탓하기 전에 국가기관의 `갑질`부터 시정하기 바란다.

손근익 대한건축사협회 회원권익보호위원장·건축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