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제리 모과나무
연제리 모과나무
사람들은 모과를 보고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먼저 못생긴 열매를 보고 한 번 놀라고, 향기로운 향에 한 번 더 놀라고, 마지막으로 열매의 떫은맛에 놀란다는 것이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마실 것으로 향긋한 모과차만 한 것이 없고 감기와 천식, 기침을 삭이는 데도 효과가 있으니 못생긴 외모쯤은 중요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모과나무는 재질이 붉고 치밀하며 광택이 나기 때문에 고급 가구재로도 사용되는 등 실용성도 갖추고 있는 매우 쓸모 있는 과일나무이다. 놀부가 흥부 집에 가서 얻어가는 화초장도 바로 모과나무로 만든 장롱이다.

모과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식재된 기록은 조선시대 광해조 때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천에서 생산되는 맛있고 즙이 많은 과일로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 모과는 과일이면서도 과일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이다. 과육이 석세포로 되어 있어서 생식을 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전통과일나무로 국가의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는 모과나무가 있으니 충북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 모과나무(천연기념물 제522호)가 그것이다. 이 나무는 수령이 500년에 이르러 나이도 지긋하다.

연제리는 예로부터 모과나무가 많아 `모과울`이라는 지명으로 일컬어졌다. 이곳에서 자란 모과나무는 조선조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도 가지고 있다. 1450년대 세조가 왕으로 등극하던 무렵 이곳에 숨어 살던 서산유씨 문중의 유윤(柳潤)이 자신을 이 모과나무에 비유하여 쓸모없는 사람이라 하며 세조의 부름에 불응하자, 세조가 친히 `무동처사(楙洞處士)`라는 어서를 하사했다는 이야기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모과나무는 유윤이 살아 있을 당시에도 제법 커서 세조에게 그림으로 그려 올릴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국내의 모과나무 중에서 규모(높이 12m, 둘레 3.34m, 수관폭 13m)가 가장 크고 수형과 생육상태도 양호한 데다 이처럼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녔으니, 모과나무 중에서 2011년에 처음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후로는 전국적으로 경남시도기념물 모과나무를 비롯하여 4기의 모과나무를 시도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과일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느 자연물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다는 점을 알려 준다. 오늘따라 승용차 안에서 방향제 역할을 하는 모과가 달리 보인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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