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양띠 '미생'에게 듣는 새해 소망

#프롤로그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 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 없는 바둑, 왜 이렇게 처절하게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일 뿐인데…` 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조치훈 9단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바둑이니까… 내 바둑이니까…" 완생(完生)을 꿈꾸는 미생(未生)은 말한다. `그래, 내 삶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미생 프리퀄 장그래 편 중에서-

#1. 취업준비생 안송이(24)씨

4년 재 지방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시급 5210원의 커피숍 아르바이트 자리다. 다섯 평 남짓한 이 남루한 공간에서 지난 대학생활을 돌아본다. 4년간 내게 투자된 자본금은 어림 잡아도 수천만 원, 국문과라는 전공을 살려 펜을 잡는 직업을 선택했다. 브라운관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방송작가의 타이틀은 나쁘지 않았다. 공부를 했다. 밤을 지새운 적도 허다했다. 하지만 난 지금,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던 커피숍 자리에 서 있다. 왜 일까, 왜 일까, 수차례 내 자신에게 질문을 건넸다. 답은 간단했다. 간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백하건 데 내 꿈은 방송작가가 아니었다. 내 심장은 은은한 원두 커피 향기를 맡을 때 요동쳤다. `바리스타!` 사실 내 꿈은 쉼터에서 커피 한 모금으로 지친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바리스타였다. 대기업에 입사한 한 선배는 수천만 원의 등록금과 바리스타 직업은 맞바꿀 수 없다고 한다. 고된 잠을 청하는 부모님을 떠올리면 지금이라도 두터운 영어책을 꺼내 들고 싶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후회 없는 완생을 꿈꾸기 위해 주말반 바리스타 학원을 끊었다. 훗날 나, 안송이만이 낼 수 있는 커피향을 부모님과 이 세상에 선사할 것이다. 그 때 소리치고 싶다. `미생들이여, 정말 바래왔던 꿈을 이뤄본 적 있냐고.`

#2. 공기업 대리 이경식(36)씨

8년 전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떠올려본다. 철없던 이십 대 막바지, 무작정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에 배낭여행을 꿈꿨다. 취업에 대한 절실함은 없었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비보, 거목(巨木) 같았던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맥없이 쓰러졌다. 불행은 몰아쳤다. 가세가 기울자 찾아든 건 빚쟁이들 뿐. 세계여행을 꿈꾸던 배낭을 내려놓고 두터운 책을 잡아야 했다. 병상의 아버지와 지친 가족을 떠올리면 하루 네 시간도 잘 수가 없었다. 가장이 되기 위한 연수를 떠났다. 상해사범대 교환학생을 선택했다.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반지하 방에서 완생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반납했다.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2007년 12월 한국전력에 당당히 입사했다. 내 직장은 부모님의 자존심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찾듯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았다. 불행도 잠시였다. 병마와 싸우던 아버지가 기적처럼 일어났다. 족쇄 같았던 빚더미를 끊어버리고 적금통장을 손에 쥐게 됐다. 그리고 떠올렸다. 내 꿈은 `행복`이라고. 36살의 나이, 이젠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다. 행복을 줄 수 있는 아내를 만나,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함께 완생을 그려나가고 싶다. 나를 일으켜준 가족, 함께 걸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이니까.

#3. 전통시장 상인 한상덕(60)씨

벌써 환갑이다. 전통시장 가판에서 옷가지며 잡화를 팔며 바친 40여 년의 생, 내게도 꿈이 있었을까. 꿈을 좇기엔 하루하루 벅찬 시대였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두 자녀와 아내만 바라볼 수밖에 없던 때였다. 시장바닥에서의 고된 삶이 몸 깊숙이 자리잡았을까. 1년 전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가판 아래서 식은 밥알을 삼키면서도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웃으며 시장통 40여 년의 삶을 살아왔는데, 고된 삶의 응어리가 종양덩어리가 된 것일까. 이대로 무너질 순 없었다. 두 자식은 결혼을 마쳤지만 난 아직 할 일이 더 남았기 때문이다. 간절한 바람은 이뤄지기 마련이었다. 대수술을 이겨내고 난 다시 시장통으로 돌아왔다. 시장통은 내게 온 세상이다.

내 직장인 전통시장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처럼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일까. 혹자는 시장통 상인의 삶은 마지막까지 미생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단돈 오백원을 깎으려는 아줌마들과 웃음 섞인 흥정을 하고, 돈 통에 쌓인 꼬깃꼬깃한 지폐를 펼쳐 통장에 차곡차곡 쌓고, 넥타이를 매고 출근 길에 오르는 자식을 바라 볼 때면 하루하루가 완생이다. 난 대학교 학사모를 써본 적은 없다. 그래서 동구 자율방범연합대장 모자를 썼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날 사장님이라 부른다.

#에필로그

2015년 을미년 (乙未年) 태양이 솟아 올랐다. 죄를 짓지 않았으면서도 캡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취업준비생, 전쟁터 같은 현실에 고군분투하는 넥타이 부대들, 쉬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네 아버지들, 이 모든 이들에게 새해 소망을 묻자 "함께 행복하고 싶다"고 답한다. 행복을 좇는 모든 미생(未生)들은 이미 완생(完生)의 길목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더할 나위 없었다. YES!` 강대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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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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