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7. 연재를 마치며

대전이라는 도시의 매력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들 중, 현재 가장 많이 얘기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원도심에 위치한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를 비롯해 시 지정문화재 등 으로 지정된 다양한 건축물들은 도시의 역사를 눈으로 보여주고, 공간의 표정과 깊이를 만들어내며, 으레 오래된 것들이 주기 마련인 안정감을 시민들에게 선사한다.

근대기에 형성된 대전은 이처럼 수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도시의 자산으로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도시의 정체성 구현과 도시 문화의 창조적인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전의 근대문화유산들은 개발과 경제적 논리에 밀려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에 놓여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대전 원도심을 중심으로 곳곳에 산재한 근대문화유산은 최근 `도시 재생`의 관점에서도 새롭게 조명하고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전일보는 지난 달 19일부터 대전 원도심의 생생한 모습과 원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대전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기획을 연재했다. 이 기획은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미래 도시의 유구한 자산으로 간직하기 위한 방안을 짚어 보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어떻게 보존 활용해야 할까?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근대문화유산의 활용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지역의 전문가들에게 적절한 활용 방안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시대적 증거물` 활용 방안 모색을 이희준 대전대 건축학과 교수

최근 원도심의 근대문화유산을 새롭게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실제 그 기능이 상실된 근대기에 지어진 건축물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전창작센터(1958), 한밭교육박물관(1938), 대전갤러리(1937), 대전근현대사전시관(1932)(괄호 안은 건립연도) 등은 모두 근대에 지어진 건축물로 각기 다른 용도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대(近代)`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적 역할을 했던 시기로서 이 때 생성된 산물은 당대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해 형성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근대문화유산`은 우리 선조들이 걸어온 역사를 증거 해 주는 것이며 후손인 우리는 이를 잘 보존해 또다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문화유산들은 우리의 `시대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 들이 많이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우리가 이 시대의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시대의 아픔과 잔혹성을 후세에 전하고 다시는 그러한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삼기 위한 `시대적 증거물`로서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도심, 장기적·일상적 관점서 봐야 고윤수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전의 원도심은 단순히 3개년 혹은 5개년 식의 프로젝트성 사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원도심은 다양한 삶의 공간이다. 중소 상공인들이 밀집되어 있고,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을 터전 삼아 자신들의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들과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오랜 삶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다시 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원도심에 대한 모든 정책들은 당연히 단기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중장기를 넘어 항시적, 일상적 업무가 되어야 한다. 또한 공간의 레이어 즉 결이 다양한 만큼 모든 행위들은 지극히 섬세해야 한다.

원도심이라는 공간은 약 10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단기적인 프로젝트로 뭘 어떻게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만들어진 건 100년이지만, 사라지거나 망쳐지는 건 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 달라붙어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킬 순 없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이루어질지, 그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최대한 예측 가능하게, 그리고 그 명암을 숨김 없이 말해야 한다.

한 가지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제 기능을 다한 건축물들에 대해 성급히 활용계획을 세우지 말고, 시민들로 하여금 그것을 느끼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비워진 것은 노는 것이며, 당연히 뭔가를 채워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가장 큰 문제이다. 아무리 효율과 생산성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이지만, 문화와 문화재에는 그것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테면, 충남도 관사촌은 도심 안에서 섬처럼 남은 독특한 공간구조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곳이지만, 한국전쟁 때 피란 온 이승만 대통령과 내각의 장관들이 머물렀던 장소로, 대전이 임시수도로 기능 한 21일간의 기억과 경험이 녹아 있는 곳이다. 또한 그리고 지금은 일본에 의해 관리되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대전 충남의 고위 관료들이 점유하며 지역을 이끌어갔던 공간이다. 여기에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슬픈 사연이 덤으로 얹혀 있기도 하다. 굳이 다른 활용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훌륭한 유무형의 콘텐츠들이 너무나 잘 갖춰져 있다. 잘 정비된 사찰을 가서 느끼는 감정과 쓸쓸히 남은 오랜 폐사지에서 느끼는 감정의 크기가 어느 게 더 클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후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많다.

◇근대 건축물 市 매입·보존 중요 안여종 대전문화유산울림 대표

대전의 근대문화유산은 원도심에 집중돼 있는 옛 충남도청을 비롯한 근대건축물들이다. 현재 원도심에는 문화재로 지정 혹은 등록 되었거나 비지정이지만 보존 상태가 우수한 근대건축물이 20여 곳으로 산재해 있다. 이러한 근대건축물은 그 도시의 근대역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매우 소중한 문화자원이다.

대전의 경우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대전근현대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충남도청과 대전창작센터로 활용하는 대전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구 충청지원, 대전갤러리로 사용하는 대전여중강당 등인데 이는 타 도시와 비교해 볼 때 근대건축물을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에 비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원도심 활성화의 우선 과제는 무엇보다 역사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근대건축물들을 시가 매입하고 보존하여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그 첫째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전시는 도시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활용하는 것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대전시의 적극적인 자세는 늘 그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개발의 논리에 밀려 그나마 남아 있는 건축물들이 사라진다면 도시의 역사와 스토리가 함께 사라지면서 역사를 느낄 수 없는 무색무취한 도시가 되어 버릴 것이다. 둔산이나 노은, 도안 지역의 개발은 전면 개발방식으로 진행된 도시개발로 인해 역사적 전통이나 공동체가 사라져 버렸다. 대규모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밀집되면서 역사와 스토리를 상실한 매력 없는 도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원도심은 현재 개발 압력과 무관심으로 그나마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대전시는 더 이상 무대책으로 일관하지 말고 적극적인 매입을 검토하고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소제동 지역의 철도관사촌과 동광장의 자재창고를 묶어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바란다. 최신웅 기자

도움말=대전시 종무문화재과·문화재청·대전문화연대·대전문화유산협의회·중구문화원

참고문헌=2010 근대문화유산 조사보고서·원도심의 장소성과 근대경관읽기·사람과 통하는 원도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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