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 필립 K.하워드 지음·김영지 옮김·인물과 사상사 256쪽·1만3500원

현대의 법과 관료주의가 인간 행동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평하는 시사평론가이자 저술가인 미국의 필립 K. 하워드가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라는 신간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규제`가 `상식`을 대처하게 된 사회에서 상식을 찾기 위해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조언하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오늘날 미국 사회의 규제가 그들의 건국이념인 `자유와 책임`이라는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국책 사업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부터 개인의 판단이 필요한 일상적 행위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규제가 불러일으킨 폐해를 진단한다. 저자는 관료 조직의 규제 맹신 뒤편에는 `법은 일률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음을 강조하고, 이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두려움에서 유래한 관료주의적 규제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식의 `법 만능주의`, `규제 제일주의`가 미국인들의 자율성을 침해해, 그들의 본래적 활력과 창의성을 갉아먹는다고 하며, 이를 `상식의 죽음`이라고 선언한다. 규제가 만사의 상식적 판단을 대처하게 된 사회에서 개인의 상식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정부 조직의 `비효율`을 지탄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역 없는 온라인 정보 민주주의의 시대에 들어서 그 폐해를 더 자주 접하다 보니, 과잉 규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규제는 그냥 두면 계속 늘어나는 속성을 가진다. 정부의 규제 담당 부서에서 규제의 절차와 기준 설정은 물론 집행의 모든 과정을 독점해, 규제가 공무원의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집행되기 때문이다. `고비용 불량 규제`가 만연하게 된 원인이다. 정부 규제는 결국 국민의 시간과 돈의 문제다. 아무리 간단한 규제라도 그 규제가 적용되기까지는 국민의 세금이 든다. 규제라는 안 보이는 세금은 독점적 규제 담당 부서의 권한에 따라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1998년 4월, 규제개혁위원회를 신설해서 취임 1년 만에 규제 총량의 50퍼센트를 감축한 전력이 있다. 이후 세계은행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를 모범 사례로 들어 다른 나라에 권장하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책은 비록 미국의 사례들을 예로 들고는 있으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크게 불거지고 있는 규제 완화 및 개혁 논의에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지적들로 넘쳐난다. 또 지혜와 풍자적 유머, 차분한 열정이 인상적으로 어우러지는 필립 하워드의 글은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정부 혁신`을 고려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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