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로서,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으로 등극한 고종은 겨울에 평상복으로 누비저고리를 즐겨 입어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1987년에 중요민속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된 `고종의 누비저고리`는 고종의 질녀(姪女)인 안동 김씨 김인규(金仁奎) 부인이 입궐하였을 때 왕실에서 하사받은 유물 중 하나이다. 자적색 운문숙사(熟紗) 겉감과 흰색 명주 안감을 겹쳐 놓은 후 0.3~0.5㎝ 간격으로 정교하게 누빈 잔누비(細樓緋) 저고리로 매우 곱기까지 하다. 잘게 누빈 누빔선에 풀을 칠하여 인두로 다려 마치 골덴직물처럼 입체적인 효과를 보였는데 이러한 누비 형태를 오목누비라 한다.

궁중에서는 왕실 복식의 조달을 전담하던 상의원(尙衣院)의 경공장(京工匠) 가운데 침선장을 두어 각종 궁중 복식을 제작하였다. 옷을 짓는 일은 바느질 기술은 물론 여러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복잡한 작업이다. 옷감 짜기, 염색하기, 자수 놓기 등 협업(協業)에 의해 옷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옷의 맵시나 품위, 효용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옷을 제도(디자인)하여 모양을 내어 입을 수 있도록 하는 침선장의 솜씨라 할 수 있다.

형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름은 누비지 않았으며 동정은 달려 있지 않으나 깃 부분의 누비 간격이 몸판보다 넓고 바느질도 성글게 되어 동정을 달았던 위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겉감은 일정한 크기의 작은 운문 사이에 박쥐문으로 되었는데 이와 동일한 문양의 옷감이 고종의 후궁이었던 광화당의 원삼(중요민속문화재 제52호)에 부착된 한삼에 사용되어 흥미롭다.

겉깃의 모양은 둥근 반달깃 형태이며 안깃은 목판깃으로 되어 있는 일반적인 저고리 형태이다. 길이는 57.5㎝이며 화장 80.5㎝, 품 49㎝이다. 진동(24.5㎝)에서 수구(20.5㎝)에 이르는 배래선이 완만한 곡선을 보인다.

옷을 짓는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인데, 지어 놓은 옷이 사람 몸에 맞아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한 장인의 말이 기억난다. 바늘과 실로 복식 전반을 짓는 침선장의 온갖 감각을 집중하여 제작하는 옷이 바로 누비옷이며, 국말의 왕실유물들이 대부분 예복 중심의 유물들임에 반해 이 옷은 평상복으로 고종이 입었던 옷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고종의 누비저고리는 현재 경기 용인시에 자리한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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