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자력발전소의 각종 도면과 매뉴얼 등 한국수력원자력의 내부 문서가 어제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인터넷에 공개됐다. 해킹으로 유출된 듯한 문서는 전·현직 한수원 임직원 1만799명의 상세한 개인정보에서부터 고리·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설계도, 계통도, 제어 프로그램 해설서 등이라고 한다. 비리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던 원자력발전소가 보안망까지 뚫린 셈이어서 충격적이다.

잘 알다시피 원자력발전소는 통제 불능 상태가 아주 짧은 시간만 이어져도 엄청난 재앙과 혼란을 초래하는 고위험 기간설비다. 때문에 전시에는 최우선적으로 적의 목표가 된다. 물리적 공격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4년간 국내 원전에 대한 해킹 시도만 1900회 가까이 된다는 조사 결과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데도 원전의 미흡한 보안 수준이 최근 정부 보안조사에서 드러났다. 원전 관제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한수원 직원 19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유출되고 폐기물업체 직원들이 마음대로 원전을 드나든 사실이 적발됐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 자신의 해킹 사실을 지난 15일 블로그에 게시해 알렸는데도 보안 전문업체의 주의 통보를 받기 전까지 미리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한수원을 믿고 국내 원전은 안전할 것이라고 여겨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스스로를 '원전반대그룹 회장'이라고 밝힌 범인은 어제 새벽 정부를 조롱한 뒤 주요 설계도면 10만 장을 추가로 공개하겠다면서 오는 25일까지 고리 원전 1·3호기, 월성 원전 2호기 등 3기의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범인은 앞서 자신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원전 제어 시스템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한 바 있다.

검찰과 경찰의 사이버 수사 인력이 총동원돼 범인을 쫓고 있다지만 이번 사건을 심각한 국가안보 위협 사건으로 보고 철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기에 범인을 검거하는 한편 원전의 보안 수준을 크게 높이고 한수원의 사이버 보안 시스템도 전부 개편해야 할 것이다. 한수원 임직원 모두 정신무장을 다시 한번 단단하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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