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김치를 발효시키고 저장하는 질박한 멋을 지닌 옹기는 빈부와 계층에 상관없이 사용된 평등한 그릇이다. 가짓수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가세가 넉넉하다고 하여 자기(磁器)에 김치와 장을 저장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집안 고사를 올릴 때도 장독대를 빠트리지 않았으며, 궁중에서 장독대를 관리하는 상궁을 '장고마마'라 별칭할 만큼 중요한 공간이었다.

원래 '옹기'라는 용어는 진흙만으로 반죽하여 잿물(유약)을 입히지 않고 구워내 광택이 없는 '질그릇(지사독)'과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구워서 광택이 나고 단단한 '오지그릇'을 함께 일컫는 말이었다. 근대 이후로는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오직 오지그릇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찰흙을 빚어 구운 옹기의 과학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미세한 구멍은 공기와 습기는 통과되지만, 입자가 굵은 물 분자는 통과되지 않는다. 옹기에 담긴 내용물은 새지 않으면서 숨을 쉴 수 있으니 신선한 발효가 보장되는 것이다. 옹기 제작기법은 원형의 점토띠를 한 단씩 쌓아 올려 원통을 만드는 똬리기법, 가래떡처럼 길게 뽑아 나선형으로 쌓아 올라가는 타래기법, 널따란 판장형태로 원형을 만들어 올려놓는 체바퀴 타래기법 등 다양하다. 옹기 장인들은 자신의 옹기점(店)에서 활동하며 기술을 이어왔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옹기 생산에 필수적인 땔나무의 부족과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용기의 출현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1980년대 초에 등장한 '광명단'이라는 유사옹기의 등장은 전통제작 기술을 지닌 장인들의 기술 전승을 중단시키는 큰 사건이었다. 옹기는 원래 표면에 잿물유약을 사용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산화연으로 제조된 연유(鉛釉)를 배합하여 제작된 광명단이 생산되면서 옹기의 질이 낮아지고 납 성분이 배어들게 되어 옹기점은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90년대 초에는 전국에 옹기점이 100여 점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는 국가와 시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인정된 옹기장(甕器匠)들이 지역별 옹기의 특색을 살리며 전통기법을 이어가고 있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주택공간의 현대화 등으로 인해 뒷마당에서 아파트 베란다로 이사한 옹기는 전통의 지속과 변화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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