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부격차·빈곤 방치 심화 소수 후원자들 지원 한계 조세정책 개선 적극 활용 대기업·부자 참여 유도를 "

얼마 전 우리 지역의 사회적기업인 공감만세 운영자들과 함께 필리핀 마닐라 바세코 지역과 이푸가오 지역을 탐방했다. 바세코에서는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이 회사의 주된 사업장의 하나인 빈민촌에 있는 공부방을 돌아보고, 이푸가오 지역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계단식 논과 그들의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탐방했다. 공정여행은 현지의 대중교통과 현지인의 숙소를 이용하면서, 현지인과 소통하며 여행자들이 소비하는 비용이 대부분 현지인에게 돌아가게 하는 여행이다.

여행 첫날 공정여행에 대한 설렘을 안고 우리가 간 곳은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바세코 지역이었다. 바세코 지역은 마닐라 도심에서 몇십 분 떨어진 곳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 3대 빈민촌 가운데 하나다. 그곳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충격적이었다.

바세코의 자활센터 현지 운영자는 우리에게 그들의 자활노력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해안에 밀려온 쓰레기에서 얻은 자원으로 가방을 만들고, 손바닥만 한 공터에 식물이나 닭을 키우며, 해안가에는 맹그로브 나무숲을 만들고 있었다. 그중 'Donated By: FTK/Koreans'라는 팻말이 붙은 맹그로브 식재지역은 우리를 흐뭇하게 했다. FTK는 Fair Travel Korea라는 공감만세 영문 회사 이니셜이다. 이 나무들이 크게 자라 이 지역을 지켜주기를… 조금만 더 외부의 도움이 있다면 이들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공정여행자들의 지원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세코 지역을 벗어나 만난 잘 정돈된 도심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넓은 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달리고, 높은 빌딩과 화려한 건물에는 안색 좋은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고 있고, 거대한 쇼핑몰에는 온갖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저녁에는 화려한 불꽃 쇼가 밤바다를 수놓는 모습이 앞서 보았던 빈민촌과는 전혀 달랐다. 21세기 천민자본주의 불평등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는 것 같았다.

'왜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을 대물림하며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가', '왜 이곳 정부와 지역사회는 세계 3대 빈민촌이라는 이 지역을 방치하고 있지', '한국 공정여행자의 이런 지원 프로그램이 과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여행 내내 뇌리에 맴돌았다. 이러한 빈민촌을 내버려두고 있는 이 나라의 부자들과 정치인에게 분노를 느끼기도 하였다.

현지의 지역운동가들과 우리 일행은 이 지역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하여 같이 토론하며 고민하였다. 결론은 우리와 같은 타국의 여행자와 소수의 후원자들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공감만세가 하고 있는 지원 사업을 이 지역의 기업과 부자들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 주민들 스스로 빈곤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품고 자립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리고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평소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가 주장하는 글로벌 세(global tax)와 누진세 도입에 부정적인 생각을 했으나, 이번 바세코 지역을 돌아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러한 극심한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최고한계세율을 80%까지 올리는 누진세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세코 같은 빈민촌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나 부유층의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자들과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와 배려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모든 세계의 각국 정부가 글로벌 세와 누진세를 도입하고, 여기서 얻은 세수로 불평등과 빈곤을 해소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 국가들의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세습화와 부의 불평등한 양극화 현상인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이러한 천민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진세 도입 같은 조세정책이 필요할 것이라는 교훈을 얻은 것이 이번 공정여행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규금 여행작가·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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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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