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 샘 리스 지음·정미나 옮김·청어람미디어·304쪽·1만5000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고 `말이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 흔히 말하기도 하듯,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이의 소통에 있어 말의 중요함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레토릭(rhetoric), 수사학(修辭學)하면 좀 거창하고 수사(修辭), 말·언어의 꾸밈 정도로 이해하자면 구시대적으로 느껴진다. 언사의 솔직·소박함이 미덕인 시대, `레토릭이 화려하다`하면 `진정성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가식으로 가득 찬` 정도의 의미로 이해될 만큼 레토릭이란 말 자체가 부정적인 이 시대에 레토릭이 여전히 유효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답하며 소통, 설득 기술로서의 레토릭(rhetoric)을 다룬다.

저자는 수사학을 `말로써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는 설득의 기술`이라 간단히 정의하고 고대, 중세시대처럼 수사학을 따로 배우지는 않지만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레토릭에 의존하며 현대의 삶의 모습은 정치, 사회, 문화, 상업적으로 지극히 수사적이라 말한다. 노동방식이 바뀌며 레토릭의 가치도 높아졌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레토릭을 도구로 하는 산업과 직종이 생겨났는데 광고가 대표적 예이며 많은 자기계발서, 대인관계 관련 서적들도 결국 레토릭를 토대로 한 것이라 말한다. 이제 레토릭은 학문도 연설가의 것도 아니며 `물고기에게 있어 물`과 같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레토릭의 세계에 놓이며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말들 -예컨대 보험사와의 언쟁, 레스토랑의 창가 자리를 부탁하는 말, 채소를 먹지 않으려는 아이를 어르는 말들 등-은 이미 설득을 위한 레토릭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반수사적 태도 또한 하나의 수사적 전략으로 간주한다. 저자는 레토릭을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할 소양을 갖춘다는 것은 정치의 토대, 문화의 DNA, 생각의 원리 같은 삶의 핵심을 통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책은 레토릭의 역사부터 요소, 종류까지 3부로 나누어 포괄적으로 소개한다. 1부에서는 레토릭의 창시자 코락스와 티시아스의 일화, 플라톤이 레토릭을 반대한 이유, 레토릭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 일화와 중세 셰익스피어의 작품, 현대 조지 퍼트넘, 휴 블래어의 저서를 통해 고대부터 21세기까지 서양에서 레토릭이 어떻게 탄생하고 변화하며 2500년간 쓰여왔는지를 풀어낸다. 2부에서는 발견, 배치, 표현, 기억, 연기란 레토릭의 5가지 요소를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 요소들은 설득의 도구이자 단계이며 과정이다. 설득을 위한 최고의 이야깃거리, 자신에게 자장 유리한 주장과 반박 근거를 찾는 것이 첫 단계인 발견이며 주장을 찾아냈다면 주장의 강약 조절로 필연적 결론에 이르도록 이야기를 배치하고 대상의 기대 기분에 맞춰 적절하게 표현한다. 레토릭에선 기억도 중요하다. 기억에서 끌어오는 인용들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연기는 말하기의 레토릭이다. 적절한 말의 속도와 자연스런 행동이 설득력을 더한다. 3부에서는 정치적, 사법적, 과시적 수사로 상황에 따른 레토릭의 종류(장르)를 구분하고 쓰임을 말한다.

저자는 진부한 테마일 수 있는 레토릭을 개괄하면서 곁들여 성경,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유혹의 천재 사탄부터 키케로· 링컨· 마틴 루터킹· 윈스턴 처칠· 아돌프 히틀러·버락 오바마 그리고 무명의 연설문 작성자 등 역사를 바꾼 설득의 고수 일곱의 결정적 장면에 얽힌 일화와 그들의 말과 글에 구사된 탁월한 레토릭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셰익스피어·스티브 잡스나 에미넴 등 철학자부터 대중음악 뮤지션까지, 유럽의 역사부터 대중문화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레토릭의 세계를 쉽고 유쾌하게 들려준다.

미디어나 광고의 비중이 커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레토릭은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되고 정교하게 활용된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이런 레토릭 범람 사회에서 레토릭을 잘 안다는 것은 내 말에 힘을 실어 한 시민으로서의 힘을 행사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레토릭을 활용한 말과 글의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한다. "거짓을 가리는 것도 거짓을 벗겨내는 것도 모두 레토릭(수사)을 통해서다." 노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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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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