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4. 옛 충남도청사와 은행·선화동

◇대전 원도심의 상징 `은행선화동(銀杏宣化洞)`=은행선화동은 1998년 과소동을 통합하면서 은행동과 선화동이 합쳐져 이뤄진 행정동 명칭이다. 은행동과 선화동은 1930년대 충남도청사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 한 후 시청, 법원, 검찰청 등 주요 공공기관이 속속 자리잡으며 대전 최고의 번화가를 형성했던 곳이다. 화려했던 과거를 보냈던 만큼 이곳은 근대도시 대전의 흔적들이 골목 곳곳마다 숨겨져 있다. 특히 근대도시 대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옛 충남도청사를 중심으로 그 인근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있는 건물들이 많다. 때문에 지금은 영화촬영 명소로 부상하는 등 문화예술을 통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옛 충남도청사 주변에 세겨진 근대의 흔적들=은행선화동에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건물은 앞서 누가 뭐라 해도 옛 충남도청사다. 2002년 5월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옛 충남도청사는 1932년 건립됐다. 1931년 1월 13일, 당시 사이코 마코토 총독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공주 지역민들의 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6월 15일 기공식을 갖고, 1932년 8월 29일 14개월 만에 서둘러 건물이 준공된다.

옛 충남도청사는 6·25전쟁 당시 6월 27일부터 7월 16일까지 임시 청사로 사용됐으며 1952년에는 충남도의회 청사로 잠깐 쓰이기도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4일간 도지사 공관에 기거했으며 이시형 부통령은 보문산 입구에 있는 한식가옥(옛 대사동별당)을 숙소로 사용하면서 국무회의를 열기도 했다.

건립 당시에는 벽돌조 건물이었으나 1960년 무렵 넓은 창을 낸 모임지붕 형태로 3층 부분이 증축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건립된 관공서 형태인 `E`자 형태의 평면 구성이며, 외부 마감은 당시 유행했던 밝은 갈색의 스크래치 타일을 사용했다. 1층 내부 벽면을 요철 모양으로 파내 장식했고, 기둥과 기단의 각을 곡선으로 처리했다. 현재 도청이전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옛 충남도청사는 우리 근·현대를 겪어 온 대전의 대표 건축물로서 상징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옛 충남도청사 바로 옆에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건물이 있다. 바로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 전통양식의 무덕관이다. 얼마전까지 충남지방경찰청 상무관으로 쓰인 이 건물은 당시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시민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상징적인 건물이었다고 한다.

또 옛 충남도청사와 인접한 곳에는 2005년 등록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된 선화동 구 사범부속학교 교장사택(現 성산교회목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 주택은 현재 대전에 남아 있는 가옥 중에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추정 되는데, 기록상으로는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기 2년 전인 1930년에 건축된 것으로 나타난다. 일설에 의하면, 1907년에 설립된 대전전기주식회사(후에 한국전력에 통합됨)의 지사장 사택으로 신축 됐다고 전해진다. 해방이 되면서 적산가옥으로 남았으며, 사범부속학교의 교장 사택과 별장으로 사용되다, 1954년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동양선교회의 선교사인 엘마 길보른(Elmer Kilborun)씨 부부가 매입하게 된다. 이후 6·25 전쟁으로 발생한 모자가정의 복지를 위해 동양선교회로부터 파견된 박영애 전도사에게 기증된다. 그후 1989년 박영애 전도사의 자녀인 임동혁 목사가 현재의 성산교회를 신축하게 된다.

선화동을 지나 중앙로를 따라 은행동에 접어들면 삼성화재 충청본부 건물을 마주치게 되는데 이곳은 대전상공회의소·대전공회당·대전시청·미군정청 등으로 사용된 기구한 역사를 품고 있다. 먼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준공돼 대전부청과 함께 대전상공회의소로 사용되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과 대전시청으로 사용됐고 1959년 시청이 대흥동으로 신축이전하면서 1, 2층은 상공회의소로 변경됐다. 그후 1996년에 대전상공회의소가 둔산으로 이전하면서 삼성화재가 건물을 인수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실시해 현재는 1층은 하나은행, 2층은 삼성화재, 3층은 삼성증권이 사용하고 있다.

은행동에 눈 여겨볼 또 하나의 건물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된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 충청지원이다. 대흥동 성당 맞은 편에 위치한 이 건물은 현재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로 사용중이다. 네거리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당을 지나면 대리석으로 만든 아치형 현관이 있다. 건물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현관 규모도 작다. 네거리에서 보이는 2층 베란다는 일반 가옥의 모습과 유사하며, 소장실과 접해있는 베란다의 경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향 빛을 차단할 목적으로 만든 파고라가 설치돼 있었다.

남서향의 배치특성으로 서향창이 많이 설치됐는데 입면에 날개벽을 설치해 햇빛을 차단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처로 1층의 서향창 부분은 철제 햇빛 가리개를 세로로 설치해 조형성과 기능성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대전의 외딴섬 목척시장= 은행선화동에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대전의 외딴 섬인 `목척시장`이다. 근대도시 대전의 발원지가 됐던 목척교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목척시장은 대체로 낯선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으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상점들과 흑백사진 속에서나 맞닥뜨릴 것만 같은 낡고 해진 건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특히 이곳에는 많은 일식가옥촌이 자리잡고 있어 과거 대전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목척시장 내에 현존하는 가옥 중 195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 지어진 가옥을 건축물관리대장을 중심으로 확인하면 시멘트블록을 사용한 조적조 단층 주택을 비롯해 일식가옥의 특징인 마찌야형(도로에 면해 건축한 일본식 전통주택) 가로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건물중 일부는 원형을 상당부분 보존하고 있으며, 일부는 부분증축 됐다. 창과 문중에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 있어 당시의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다. 현재까지도 대부분이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고 일부는 여러 세대가 한 건물에 기거하고 있다.

목척시장 일대는 2013년에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목척시장에 부는 바람`사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 사업의 성과로 예쁜 벽화와 아기자기 한 조형작품들이 골목 곳곳마다 숨어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사업은 2013년에 종료되고 시의 지원을 더 받지 못하게 되면서 상주하던 예술가들도 아쉬움 속에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남아있는 원주민들은 지금까지 지내온 것처럼 삶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웅 기자

도움말=대전시 종무문화재과·문화재청·대전문화연대·대전문화유산협의회·중구문화원 참고문헌=2010 근대문화유산 조사보고서·원도심의 장소성과 근대경관읽기·사람과 통하는 원도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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