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개 있다는 것 잊은 우리 젊은이들 안정적 삶 원해 도전 정신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의 희망도 사라져 "

이제는 단풍잎도 다 떨어져 간다. 집 앞에 한창이던 진초록 잎사귀들은 벌써 빛이 바랬다. 여름 내내 이곳을 지나다녔을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는 이제 멀리서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앞산에 붉거나 노랗게 물든 단풍이 어울리는 나무들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새벽으로 스산하기까지 한 가을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들녘으로 과일들이 익어가고, 산골짜기에는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야생 열매들이 맺혀 있다. 가을 추수가 가져다주는 풍요로움과 쓸쓸함이 우리의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한비야 씨가 한남대 토크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었다. 그녀는 어떤 모양으로든 그늘진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원기왕성한 여걸의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세계 곳곳에서 오지탐험가로, 재난구호팀장으로 모험과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삶에 우리 젊은이들은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 현실과 부딪치면서도 한 달에 열 권씩 책을 읽으며, 산에 오르며 생각하고 운동하기를 즐긴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젊은이들에게 간곡하고 진실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자신의 진심이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그녀는 말했다. "가슴 뛰고, 피가 끓는 일을 하며 살라"고. 요사이 젊은이들이 너무 안주하기를 바라는 성향을 안타까워하면서… 이제는 이름이 꽤나 알려져 있어 연예인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그녀이지만, 그녀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젊은이들이 구호 현장에서 그녀가 겪는 온갖 불편함과 위험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에게 그녀는 '그건, 사랑이었네'라는 에세이에서 기도문을 들려주고 싶어 한다.

'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날개가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 낭떠러지는 맞닥뜨리지 못할 절망이라서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견딜 만한 도전만 받아들이는 계산적인 마음은 단지 그만큼의 열매만 맺을 뿐임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도전하는 만큼 도달할 수 있다는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만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밝지가 않다. 이렇게 가다간 300년 후에는 나라가 없어질 수 있다고 한다. 아이를 낳지 않아서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자들이 문제다. 도무지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만들어가지 못한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작은 사람이라도 크게 만들 수 있는 그릇이 없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웃고 노래할 수 있는 마음 터가 없다. 어떻게 사람을 만들 수 있는가. 어떻게 사람이라는 열매가 영글 수 있는가.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날개에 아직 힘이 없어도 자꾸자꾸 날갯짓하며 나는 시늉을 해보아야 할 텐데 이곳저곳에서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보겠다고 용틀임을 하는 몸짓들을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너무 일찍 우리는 날개를 접었나보다.

가을 햇볕이 아직은 따스하다. 그러나 이제 곧 겨울이 모퉁이를 돌아 나오겠지. 때가 되면 더욱 움츠러든 몸으로 겨울 바람을 맞으며 버티고 서 있게 되겠지. 그래도 영 마음이 꺾이지는 않아야 되겠지. 그래야지. 힘을 내야지. 몸속에 감춰진 날개를 펼 준비를 하며 한 발 한 발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가야지.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는 세상을 향하여. 그런 세상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믿으면서… 젊은이가 열매로 맺혀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나부터 날개를 펴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면서…. 이달 한남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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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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