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정체·단순 하청 기업 첨단 기술로 비전 키우려면 우수 연구기술과 매칭 절실

대전은 참 살기 좋은 도시다. 도시 규모가 적당히 커서 편하다. 교통이나 자연환경도 좋은 편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과학수도'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부출연연구소와 KAIST 등 세계적인 대학, 그리고 첨단벤처기업들이 소재하고 있다. 또한, 타 지역이 부러워할 정도로 연구개발특구 육성정책에 따른 자금과 제도적 지원도 갖춰져 있다.

그런데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대전이 기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한다. 항만이 없어서 물류가 불리하고, 결정적으로 산업용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전에 대기업이 입주하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용지 부족 때문일 거라는 말도 있다. 대전은 대청호, 계룡산, 보문산, 자운대로 둘러싸여 산업용지 개발이 어렵다. 유일하게 트인 곳이 북동쪽의 대덕연구개발특구 지역이다.

필자는 대전의 산업용지 부족 문제를 연구개발특구의 장점을 살려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려면 대전의 산업 구조를 넓은 용지가 필요한 전통 제조업에서 첨단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토지와 시설이 아니라 기술과 인재로 경쟁하는 것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

이미 대덕테크노밸리에는 많은 첨단기업이 성공하고 있는데 이들은 처음부터 첨단 업종으로 창업한 기업들이다. 반면 기존 산업단지에는 금속가공 등 굴뚝기업이 많다. 이들 기업은 업력도 오래되고 매출도 수백억 원 수준에 이르지만 이익률이 낮고 성장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 제조 기반의 대기업이 어려워질 경우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굴뚝기업이 스스로 첨단기업으로 변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큰 기업의 하청 또는 협력회사로 주문제작에 매달려온 경우 신사업을 발굴할 인력도 부족하고, 우선 당장의 주문을 처리하기에 여념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기업이 첨단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연구개발특구의 공공기술을 접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에서는 수년 전부터 그러한 시도를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출연연과 대학의 기술이 기업으로 흘러들어가 그 기업의 미래를 바꾸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각 연구기관에서 우수기술을 발굴하여 기업과 매칭시키고, 이전된 기술이 사업화되도록 후속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모델이 될 만한 H사의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 동사는 매출이 500억 원에 수준에서 수년간 정체상태에 있었다. 2012년에 특구의 '신사업아이템발굴' 과제에 참여하여 1년간 조사한 결과 유망한 신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1년 뒤에는 10억 원 이상의 기술료를 내고 출연연에서 핵심기술을 이전받았다. 금년에는 특구기술사업화 과제에 선정되어 이전된 기술의 상용화를 추진 중인데 수년 후 매출액이 1000억 원으로 2배 증가하고 이익률도 매우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부가가치 수종 사업이 생기면서 코스닥 상장까지 시도할 수 있는 큰 꿈이 생긴 것이다.

이와 같이 연구기관의 기술이 전통기업에 이전되어 그 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그동안 대덕특구 출연연의 기술이 수도권 기업에 이전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선 대전지역 전통기업에 이전시키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동안 대덕테크노밸리 입주기업 육성에 집중하였다면, 앞으로는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어 있는 대전 3-4산업단지 입주기업을 첨단기업으로 변모시키고, 향후 1~2산업단지 입주기업까지 확대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덕특구에는 출연연만 밀집해 있는 것이 아니라 26개 대기업 연구소가 입주해 있다. 이들 민간 연구소에 근무하는 인재가 6000명이 넘는다. 대전지역의 전통 중소기업이 대학이나 출연연뿐만 아니라 대기업 연구소와 협력하여 변모를 시도한다면 단기간에 글로벌 혁신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윤병한 대덕연구개발특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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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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