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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집 입니까

2014-11-21 기사
편집 2014-11-21 05:40:52
 노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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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로완 무어 지음·이재영 옮김·계단·512쪽·2만원

첨부사진1

'집'하면 사적 주거공간으로서의 '집'으로 한정하기 쉽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집은 실용적 목적으로 지어진 기거하거나, 물건을 만들거나 보관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먹을 수 있는 곳(건물)이란 포괄적이고 확장된 개념이다. 이 책은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 보통 건축물이라 칭해지는 모든 구조물과 그것을 짓는 행위로서의 건축 모두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고찰한다.

우리는 왜 집을 짓고, 집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로완 무어는 인간 본성과 건물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면밀하고 날카롭게 펼쳐낸다. 건물을 짓거나 형태를 결정할 때 종종 우리의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고 모순적인 충동이 관여한다며 돈, 가정, 상징, 섹스, 권력, 과시, 희망, 아름다움, 생활, 매혹이라는 열 가지의 인간 욕망과 감정을 살피고 특정건축물에 이런 욕망과 감정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 투사되는지를 분석한다. 건축에 투사되는 욕망과 감정은 재앙 같은 실패를 가져오거나 매우 탁월하고 성공적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저자가 대표적 실패의 예로 든 건 두바이다. 광기에 가깝도록 어처구니없게 크거나 기괴한 건축을 '상징적'이라고 치켜세우는 두바이의 건축에 대해 그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누구의 욕망인가를 묻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버즈 두바이, 바다였던 곳에 지어진 하얀 돛 모양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인 버즈 알아랍 등이 들어선 두바이는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화려한 이미지와 가치로 또 다른 거대건축을 위한 비용조달에 성공하지만 그 이면의 심각한 하수(下水)위기와 이주 노동자들의 처우 등은 이 건축물들이 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두바이의 화려한 성공(?) 뒤로 유보시켰던 질문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두바이는 단순한 사실 하나를 말한다. '건축은 순수한 이성과 기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아울러 그 반대로 감정과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두바이의 건축은, 셰이크의 권력에 대한, 영광을 위한, 최고를 향한 야망에 의해 생겨났고, 이어 다른 사람들의 돈, 사치, 흥분에 대한 욕망을 끌어들였다.-31쪽 '

건축은 의뢰인이나 건축가, 건설회사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고 사용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는 것이 로완 무어의 생각이다. '짓는다'는 말은 건설회사, 노동자, 의뢰인. 건축가, 혹은 다른 전문가들이 실제 물리적인 건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뜻한다. 그러나 이 동사는 은유적으로 쓰일 수 있다. 건축물을 사용하고 경험하는 사람들, 즉 우리 대부분이 물리적으로 그리고 상상 속에서 우리가 찾아낸 공간들에서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방식도 가리킬 수 있다.-35쪽'

브라질의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는 '건축은 단독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 및 사물과 상호작용하며 우연과 시간과 삶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과 남편을 위해 디자인한 상파울루의 '글라스 하우스'는 이러한 그녀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그곳은 그들의 가정이자 공동체의 마당이며 '공개주택'으로서 인간의 감정, 욕망이 건축물에 긍정적이고 탁월하게 구현된 예다.

로완 무어는 건축적으로 형성된 공간을 점유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건물의 특성과 의미에 영향을 주며 따라서 건축물은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 설계한 사람과 거주하는 사람 사이, 세대까지도 뛰어넘는 서툴지만 강력한 의사소통 수단이며 건물의 생명과 의미는 처음 만든 이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모한다 말한다.

예컨대 1840년대부터 1860년대까지 만들어진 영국의 켄싱턴,노스켄싱턴, 노팅힐, 노팅데일 지구를 보면, 처음 이곳은 하인 딸린 부유한 대가족에 맞춰 설계돼 위계적, 기능적으로 차별화된 밚은 방들을 갖추고 있었지만 지난 150여 년간 연립주택으로 분할되어 있었으며 때로 빈민을 위한 공동주택이 되기도 하고 이민자와 보헤미안, 학생들의 숙소가 되었다 다시 나눠진 곳들이 합쳐 괜찮은 집으로 복구되고 그러면서 몇몇 주택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소유가 되기도 했다. 각각의 개별적 상황에 맞추어 이 거리와 건물은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물리적 변화뿐 아니라 인식의 방식에도 변화는 일어나며 이런 유동성과 유연함이 건축의 본질이고 힘이며 매력이라는 것이 로완 무어의 얘기다.

돈과 권력, 과시와 매혹 같은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 집을 짓게 하며 집은 다시 그러한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이때 집은 단순한 기능적 구조물이 아니라 거기 깃든 사람이고 사회며 관계, 삶의 방식이라는 이야기를 로완 무어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예시와 분석으로 쉽고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노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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