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1. 연재를 시작하며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옛 충남도청사. 사진=대전시 제공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옛 충남도청사. 사진=대전시 제공
도시는 정치, 경제, 사회활동의 중심지이면서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연결하며 전통과 개성이 조화된 독특한 문명을 창조해 낸다. 도시의 내밀한 풍경 안에는 변화와 역동의 과정이 녹아 있고 그 흔적은 오늘의 모습에 투영되며 지난 역사를 반추할 수 있다. 도시의 역사적 자원과 문명의 다양한 산물은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생명선이자 `다음`의 세대에 도시의 가치를 높이게 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근대기에 형성된 대전은 수 많은 도시의 자산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도시의 정체성 구현과 도시 문화의 창조적인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전의 근대문화유산은 지난 역사를 관통하며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자산이지만 개발과 경제적 논리에 밀려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곳곳에 산재한 근대문화유산은 최근 `도시 재생`의 관점에서도 새롭게 조명하고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대전일보의 기획 `대전 근대문화유산 답사기`는 생생한 현장의 모습과 그 유산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스토리를 풀어 내는 새로운 형식의 답사기이다.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미래 도시의 유구한 자산으로 간직하기 위한 방안을 짚어 보는 이번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깊은 관심을 부탁 드린다.

◇근대도시 대전의 태동=한국의 근대건축은 1876년 개항 이후부터 시작됐지만 대전의 경우는 1904년 대전역 개역(開驛) 후부터 시작됐다.

대전 근대사의 본격적 진입 축은 1928년 세워진 `대전역`과 1932년 준공된 `충남도청`이다. 한말(韓末)의 대전은 도시로 열리기 이전의 한촌(寒村)에 머물러 있었다. 경부선 철도의 부설로 인해 본격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호남선의 통과 역시 대전의 발전에 매개했다. 당시 철도는 도시화, 근대화를 이끄는 동력이었다. 철도의 통과로 교통의 중심지, 교차지가 된 대전에는 인구가 집중했고, 특히 일본인의 이주, 정착 속도가 가속화됐다.

첫 대전역의 준공은 1904년 6월이었고 실제 개통일은 1905년 1월 1일이었다. 1920년대 중반 대전역을 중심으로 대전은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인구는 1만명이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후 대전역에서 북으로 뻗어 회덕면 읍내리를 통하는 도로를 따라 일본인의 상가는 들어섰고 또 남쪽으로 인동(仁洞)을 거쳐 금산으로 뻗는 도로를 따라 상가도 늘어났다. 1932년 9월 30일 공주로부터 대전으로의 충남도청사 이전이 종료되고 이후부터 대전역에서 충남도청에 이르는 도로는 중심가로 자리잡고 대전 중앙로는 원도심의 핵으로 부상하게 된다.

◇대전 원도심의 의미=흔히 `원도심`이라고 하면 지금은 쇠퇴해 버린 과거의 구도심이나 기존 도심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시역의 확장이나 새로운 도심과 부심의 성장으로 인해 최근 10년-20년 사이 급격한 쇠락을 경험하고 있는 지역이 원도심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원도심은 대전이 근대도시로 형성돼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 변화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도시 중심 기능을 담당했던 뿌리이기도 하다.

대전의 원도심은 `근대도시로서의 대전`이라는 도시 이미지와 관련해 그 연원이 되는 지역이다. 원도심은 지난 100년 간 진행된 대전의 도시 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그 중심 기능을 수행했던 곳으로 `근대도시`로서의 대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원형과 같은 공간이다.

대전의 원도심은 현재의 중구 대흥동과 은행선화동, 동구 중앙동과 삼성동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을 말한다. 1900년대 초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더불어 대전이 도시로 형성,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출발이 됐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원도심이 아닌 대덕구 읍내동과 유성구 원내동 일대가 회덕현과 진잠현의 읍치로서 전통적인 중심 역할을 수행해 왔다.

◇대전 원도심의 문화유산=원도심 일대에는 근대도시 대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등록문화재와 시문화재자료, 그리고 근대건축물이 산재해 있다. 특히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21종의 대전시 관내 등록문화재 21종 중 14종이 원도심 권역에 속하는 은행동·대흥동·선화동·인동·중동·원동·소제동 등에 있다. 그리고 그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다.

동구 중동에 위치한 인쇄거리는 근대식 건물이 아기자기 하게 밀집된 곳이다. 최근에는 고전적인 분위기 덕분에 영화촬영 명소로 급부상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송강호 주연 `변호인`의 변호사 사무실이 인쇄거리에 위치해 있다.

대흥동에 위치한 등록문화재 제18호 옛 충남도청사 본관은 근대도시 대전을 상징하는 건축물. 옛 충남도청사는 평면이 `ㄷ`자 형태인 철근 콘크리트 구조 건물이다. 창호 외부는 철재, 내부 창과 출입구는 목재로 제작됐다. 외벽면 마감은 배면을 제외하고 스크래치 타일을 붙였다. 건물의 형태는 1930년 설계된 평안남도청과 유사하다. 일본 건설회사 스스키자가 공사하고 당시 유행하던 스크래치 타일을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준공 당시 2층이었던 충남도청사는 2공화국 시절인 1960년도에 3층으로 증축됐다. 증축된 3층은 기존의 1-2층과 다르게 넓은 창을 내 무게를 줄이고 지붕도 기존 평지붕에서 모임 지붕으로 변경됐다.

지난달 30일 등록문화재 제643호로 지정된 중구 대흥동 성당은 원도심의 문화 거점이기도 하다. 천주교 대전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성당 건물 뿐만 아니라 주변에 가톨릭문화회관 등 다양한 근·현대 건축물도 함께 조성돼 있어 근대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1919년 11월 12일 목동본당으로 출발한 대흥동 성당은 1938년 유치원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현재 위치를 확보했다. 1945년 10대 신부로 부임한 오기선 신부가 현재 위치로 본당을 이전해 대흥동 성당으로 개칭했다.

이와 함께 옛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 철도청 보급창고 등 원도심 일대에는 20여 개의 근대적 건축물 등이 도시에 이색 풍경을 제공하면서 도시의 지난 역사를 말 없이 웅변하고 있다.

이들 근대문화유산은 최근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도시 재상의 관점에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보존되고 창조적으로 활용돼야 할 유산으로 꼽힌다. 최신웅·전희진 기자

도움말=대전시 종무문화재과·문화재청·대전문화연대·대전문화유산협의회.

참고문헌=2010 근대문화유산 조사보고서·원도심의 장소성과 근대경관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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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현재 모습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현재 모습
대전 동구 인동에 위치한 등록문화재 제98호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1922년 건립당시 모습
대전 동구 인동에 위치한 등록문화재 제98호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1922년 건립당시 모습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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