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년(紙千年), 견오백(絹五百)'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의 수명은 500년이지만 한지의 수명은 1000년을 간다는 말이다. 그만큼 전통 한지는 천 년을 견디는 내구성을 지니고 있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석가탑을 창건할 당시인 서기 751년 통일신라시대에 넣은 것으로, 1200여 년이 넘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벗기고, 삶고, 두들기고, 뜨고, 말려 만드는 전통 한지의 제작방법은 홑지나 합지 형태의 두껍고 질긴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지가 지닌 질기고 높은 백색도와 뛰어난 통기성, 보온성, 흡방습성은 이러한 공정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전통 한지는 빛깔이 희고 고와 흰백(白)자를 써서 백지라고도 불리지만. 일백백(百)자를 써서 백지(百紙)라고도 하는 이유도 한지 한 장을 만들려면 만드는 사람의 손이 아흔아홉 번 가고 사용하는 사람의 손이 백 번째로 간다고 하여 생겨난 말이다.

일명 '닥종이'로 불려지는 우리의 전통 한지는 값싼 수입 종이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다. 수요가 급격히 줄고 화공약품과 기계를 이용한 양지의 생산이 크게 늘면서 종이의 가치에 대한 인식마저도 함께 낮아졌다. 한지 제조의 맥을 잇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7호 등 얼마 남지 않은 한지장들이 전승이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지의 어원은 본래 닥나무껍질을 가공하여 손으로 만든 종이를 일컫는 것으로, 조선조 말엽 일본을 통하여 서양식 기계로 만든 종이가 나오면서 그간의 종이는 한지(韓紙)라 하고 서양의 기계종이를 양지(洋紙)라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 정확한 개념 없이 기계로 만들었어도 닥나무 원료를 사용했거나 외관이나 특성이 비슷하게 만들어졌으면 '기계한지'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닥나무 수급의 불안정으로 수입 닥이나 유사 원료를 혼합하거나, 제조공정의 편이성을 이유로 화학약품 등을 첨가한 것도 한지라 일컬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한지란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닥나무껍질을 주원료로 하여 만든 한국 고유의 수초지(手抄紙)이다.

우리에게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옛 기록물들이 수없이 많다. 기록유산이 담고 있는 역사성적 가치 못지않게 그 기록을 머금고 있고 한지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유산이다. 이제 한지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여 전통 방식 그대로 제조한 한지를 '전통한지'로 제대로 명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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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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