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규제 완화가 화두였던 것 같다. 최고 권력자의 뜻이니 가히 광풍이라 할 만하다.

규제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어떤 사항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국민의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을 가하게 된다. 따라서 규제가 적을수록 살기 좋은 나라일 것이다. 행정편의주의적인 규제를 완화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것과 풀어서는 안 되는 사안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 완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건축법에선 주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전용주거지역과 일반주거지역 내의 건축물에 대해 일조권 규정을 두고 있다. 1962년 건축법이 제정된 이래 일조권 확보를 위한 공간을 북쪽에 확보한 결과 집안의 공터는 언제나 북쪽에 생겨났다. 같은 공간을 남쪽에 확보토록 했으면 보다 쾌적한 환경이 됐을 것이다. 잘못된 법규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건축물 높이 8m까지는 진북방향의 대지경계선까지 2m의 거리를 이격하도록 돼 있었으나 2012년 12월 높이 9m에 1.5m를 이격하도록 개정된 바 있다. 이에 따라 건축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이는 철저하게 공급자의 시각일 뿐이고 소비자(입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주거환경의 악화를 초래한 퇴행일 뿐이다.

법 제정 시 중부지방 기준으로 태양이 가장 낮게 뜨는 동짓날의 최소 4시간 일조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규정이 이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반세기가 흘러 선진국 문턱에 와 있으나 주거환경은 오히려 더 악화된 것이다.

지난달 22일 건축물의 높이 제한 규정(건축물의 높이는 도로 반대편 경계선까지 거리의 1.5배까지만 허용)을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건축법 개정안을 강석호 의원 등이 발의했다. 이는 보행자의 최소한의 개방감 확보를 위한 것으로 도로변에 지나치게 높은 건축물이 난립하는 것을 방지해온 규정이다. 대안으로 가로구역별 높이를 정한다고 하나 이는 시행령이나 조례에 위임하는 것으로서 매우 우려스럽다. 좁은 골목길에서 가물가물한 건물 사이로 좁은 하늘을 어지럽게 바라볼 날이 올 수도 있다. 높이 제한을 시행령이 아닌 모법에 규정해 놓은 것은 그만큼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일 터이다.

주택보급률 103%(2013년도 기준·통계청)의 시대다. 이제는 공급자보다는 수요자, 대량공급보다는 주거환경의 질을 고려할 때가 됐다. 손근익 대한건축사협회 회원권익보호위원장·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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