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민자치박람회 우수사례 선정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사례들이 접수됐지만 최종 결과 부산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례가 선정되었고 그 우수성에 심사위원 모두가 놀랐다. 면접을 통해 선정된 사례들이 부산시의 '산복도로르네상스' 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복도로는 6·25전쟁 중 피란민과 경제개발기의 무허가 서민층 정착으로 취약계층이 밀집한 부산의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그 지역이 2011년 초부터 부산시가 추진한 '산복도로르네상스 마스터플랜' 로드맵에 따라 지역공동체 회복과 참여에 기반을 둔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연구실 책장에는 아직도 2011년 초 부산발전연구원이 보낸 '산복도로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이 자리하고 있다. 부산 연고가 없는 필자에게 보고서치고는 제법 두꺼운 마스터플랜을 보내온 것은 마스터플랜의 벤치마킹 대상이 민선 4기 대전시가 추진한 '무지개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자문위원장으로 참여했던 무지개프로젝트는 슬럼화 또는 사회격리현상이 심화되는 영구임대아파트단지, 달동네 같은 취약지역의 복합적 문제를 대전시 전체 부서가 나서서 해결하려던 정책실험이다. 물리적 주거환경 개선만으로 취약동네 문제의 근본처방이 될 수 없다는 진단 아래, 무지개프로젝트는 2006년 말부터 복지, 보건, 교육 분야에서 종합적 서비스 개선뿐만 아니라 취약동네 주민 참여와 유대 형성을 통한 지역공동체 회복에 초점을 두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당시 선진적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언론·학계를 포함해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민선 5기 대전시장의 교체와 함께 무지개프로젝트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성격이 변질되면서 지금 그 정책을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2013년 12월 통과된 '도시재생특별법'은 무지개프로젝트에 대한 아쉬움을 상기시킨다. 현재 마련된 도시재생특별법은 지역공동체 참여와 종합적 접근이라는 무지개프로젝트의 기본철학과 도시재생 전략을 반영하고 있다. 실제 특별법 준비 과정에서 당시 국회 새누리당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현 서병수 부산시장은 대전시 관계자를 불러 무지개프로젝트 사례를 전체 위원회 앞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특별법 출범과 함께 정부는 예산과 인력의 우선 지원 방침 아래 올 4월 전국 13개 선도 지역을 선정했다. 결과는 산복도로르네상스 거점지역인 부산 동구는 포함된 반면, 대전시는 한 곳도 선정되지 않았다. 선정 결과와 상관없이 현재 대전시는 특별법이 요구하는 도시재생전략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만약 무지개프로젝트가 지방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일관되게 추진되었더라면 도시재생 분야에서 대전시 위상과 역량은 어떠했을까?

1995년 민선자치 부활은 선도적·창의적인 지방정부의 정책주도권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반면, 자치단체장 교체에 따른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 훼손이 지방자치의 폐단으로 줄곧 지적되어 왔다. 다섯 번의 민선자치를 거치면서 대전시는 지방자치의 명과 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선 3기 '복지만두레'와 민선 4기 '무지개프로젝트'는 중앙정부와 다른 지자체의 모범이 될 만큼 대전의 정책주도 역량을 보여준 대표 사례들이다. 하지만 시장 교체라는 변수와 함께 복지만두레는 민선 4기 침체를 겪었고, 민선 5기에는 무지개프로젝트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선임자 정책의 옥석을 가리고 정책의 일관성을 통해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후임 지도자의 덕목이자 리더십이다. 역대 대전시 리더들은 자신의 대표 정책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선임자의 좋은 정책을 키울 만큼의 덕성과 역량은 보여주지 못했다. 민선 5기 '사회적자본확충' 정책은 사회적 신뢰 형성을 목적으로 전례 없이 민·관·학 파트너십과 시의회와 집행부의 공감대 속에 추진된 대전의 상징적 정책이다. 민선 6기는 사회적자본확충 정책의 방치 또는 폐기로 높은 매몰비용을 치르는 우(愚)를 반복하지 않고, 적극적 보완·개선을 통해 정책 계승과 완성도로 칭송받는 리더십 전통의 시발점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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