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미래권력인가 아닌가. 정치에서 미래권력은 차기 최고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을 때 쓰는 표현이다. 반 총장을 미래권력으로 부르려면 그만한 입증사유를 충족해야 한다. 물론 이른 감이 있다. 그래도 탐색이 불가능한 명제는 아니다.

왜인가에 대한 해답은 반 총장의 차기 대선 주자 여론 지지율에서 찾아진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그는 39%대를 찍었다. 그의 뒤를 잇는 주자들 지지율 합계는 넉넉히 잡아도 30% 안팎이다. 1인에게 몰아줘도 반 총장을 당해내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 지지율 추세가 차기 대선 때까지 지속될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그의 이름을 집어넣었을 뿐인데 제도 정치권 내 주자들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은 확실히 예사롭지 않다.

미래권력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반 총장의 고공 지지율이면 차기 감으로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여겨도 무방하다. 개인의 평시 여론 지지율은 선거민주주의에서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다. 본선에 뛰어들 경우 감가상각을 최소화하게 되면 득표율과 대등하게 맞바꿀 수 있다. 지지율은 차기 대선 시장에서 유권자 표와 교환할 수 있는 적립식 펀드 같은 것이다. 만기 수익률 기대치가 높을수록 서로가 서로를 견인하는 구조라 하겠다.

초미의 관심사는 반 총장이 대선 시장에 진입할 것이냐에 있다. 본질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한다, 안 한다를 예단하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직을 8년째 수행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국내 정치에 다리를 걸치려 해도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며칠 전 외교부 국정감사장에서 반 총장이 대선과 관련해 언급했던 내용이 전언 형식으로 소개된 바 있다. "몸을 정치 반 외교 반에 걸치는 것은 안 된다", "국제기구 수장으로서 정치에 몸 담는 건 옳지 않다" 는 것이었다.

반 총장의 차기 대선 관련 언급은 그의 위치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변함없는 사실은 그에 대한 여론 지지율이다. 여론조사는 평균적인 국민 총의를 기술적·통계적으로 확인하려 할 때 동원된다. 백미는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라 할 수 있다. 다음 번에 국민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순위가 추출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진출 1호다. 유엔 사무총장직을 꿰차기까지 비화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전 장관이 지난 5월 펴낸 `칼날위의 평화`라는 비망록 성격의 책을 보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 비밀작전 비슷한 내용이 비교적 실감나게 기술돼 있다. 외교관을 천직으로 알고 외길을 걸어온 반 총장은 지금 국제 외교무대 최정점에 서 있다. 그의 입장에서 차기 대선은 많이 거북할 수밖에 없는 담론이다.

반 총장은 명시적으로 차기 대선에 관심을 표명한 적이 없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흥미가 배가된다. 요컨대 그는 차기 대선과 관련해 말로써나 행동으로써나 `부작위(不作爲) 주자`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정치적 목적을 겨냥해 적극적으로 행위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작위(作爲)`에 열심인 국내 주자들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런 지지율 구도를 가능케 한 행위 주체는 국민이다. 여론조사에 반영된 국민의사가 반 총장의 개인의사와 무관하게 지지율 1위로 밀어 올린 동력이다. 그러므로 반 총장을 미래권력으로 규정 못할 이유가 없다. 선거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체제에서 차기 대선판에서 반 총장을 표로써 `구매`할지 여부는 유권자인 국민의 판단 영역이다. 만일 나중에 그가 죽어도 안 하겠다면 그건 못 말린다.

충북 음성 출신인 반 총장은 희귀성인 반(潘) 씨다. 사족이지만 한자를 파자(破字) 하면 `수채전(水采田)`이 된다. 그런데 채(采)의 맨 위 한 획을 날리고 쌀 미(米)를 사용하면 `수미전(水米田)`이 된다. 고향 사람들이 그리들 쓰고 있다고 한다. 채를 쓰면 채소밭에 물이 들어 썩는다는 뜻이 되지만 미로 쓰면 쌀과 물은 잘 어울린다. 반 총장을 대하는 자긍심의 한 단면이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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