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이인면 신영2리. 공주 사람들이 아니면 낯설어 할 지명을 가진 이 농촌 마을에 440억 원짜리 대형 건축물이 세워지고 있다. 다섯 달 뒤인 내년 3월 개통된다는 호남고속철도 공주역 역사(驛舍)가 그것이다. 주변은 온통 논밭에 야트막한 야산뿐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형상이다. 이곳에 닿는 도로는 현재 국도도 아닌 643번 지방도뿐이다. 공주시가 시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한 인구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신영2리 인구는 55가구 138명. 변화가 거의 없는 농촌 마을 특성상 현재 가구수, 인구수도 큰 차이가 없을 듯하다. 같은 기간 이인면 전체 인구는 4090명, 바로 이웃한 탄천면 인구는 3663명이다. 이 2개 면 인구를 합쳐도 8000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공주 사람들은 내년 3월부터 공주역에서 고속열차를 자주 타게 될까. 목적지가 서울이라면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주역은 공주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 17㎞쯤 떨어진 곳에 있다. 자동차로 20분 넘게 달려야 도착한다. 택시를 타면 요금은 2만 원 이상 나온다고 한다. 공주시 신관동 종합터미널에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탈 경우 천안-논산 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에서 정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1시간 30분에서 1시간 40분 뒤 서울에 도착한다. 공주 도심에서 서울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 공주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에 가는 시간과 별 차이가 없다. 돈은 훨씬 많이 든다. 이인·탄천면 주민들이 서울에 가더라도 버스보다 비싼 요금에 주저하게 될 듯하다. 인접한 논산시와 부여읍 도심에서는 15-25㎞가량 떨어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KTX 공주역의 하루 이용객 수는 100명이 안 될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어째서 공주역은 이런 곳에 자리 잡게 됐을까. 시원하게 알려주는 정설은 없지만, 공주역사 위치 문제를 살피자면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및 호남고속철도가 갈라지는 분기역이 오송역으로 결정되는 과정까지 거슬러가야 한다. 행정수도가 2004년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을 받은 뒤 당시 정부는 대안으로 행복도시를 추진했다.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으로 각각 대전역과 천안아산역을 밀었던 대전과 충남은 행복도시 역시 거센 반대론에 직면하자 힘을 얻기 위해 충북에 손을 내밀게 된다. 행복도시에 정부부처들이 이전해 오기까지 충북은 대전·충남과 함께 의지 표명과 행동을 같이했음은 잘 아는 바이다. 일련의 이 과정에서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은 오송역으로 확정됐는데, 충북이 협조 조건으로 대전·충남에 이를 제시했고 대전·충남 그리고 정치권이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건 흔적은 찾기 어렵다는 게 당시 취재진들의 말이다. 이런 추론이 맞다고 장담할 순 없으나 정황상 설득력 있는 관측으로 회자된다.

이후 호남고속철도 노선계획을 본 충남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호남고속철도가 충남 남부를 지나가긴 하는데 오송역 이후 정거장은 전북 익산역이었기 때문이다. 충남 남부에 정차역 하나 늘리는 게 관철된 뒤, 공주·부여·논산 등이 자기네 행정구역 안에 정거장을 두자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건 우리가 잘 알고 있다.

KTX 공주역이 정치적으로 결정됐다는 취지의 최근 일부 언론 보도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일 "공주·부여·논산·계룡 등 공주권 4개 인접도시의 균형적인 접근성과 열차 운영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요지의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열차의 안정적인 운행을 위해서는 역과 역 사이 거리가 최소 43-45㎞는 되어야 한다는 기술적 원칙을 충족하고, 4개 인접도시의 요구를 수평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대안이 공주시 이인면 신영2리였던 셈이다.

투입되는 세금 대비 효율성을 생각하면 KTX 공주역은 일면 낭비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우리의 한계와 의식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시 뜯어낼 수도 없는 만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는 없는지 발상을 달리해 찾아보라는 숙제를 코레일과 4개 인접도시에 남기게 됐다.

논설위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류용규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