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 지음·김세진 옮김 알에이치코리아·560쪽·2만5000원

지역 갤러리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작품 값이 수 백억원을 호가한다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들은 대체로 기괴하다. 죽은 소의 부패한 머리에 파리, 구더기까지 등장하는 직육면체 유리상자('천년') 혹은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된 해골('신의 사랑을 위해') 등. 현대미술 하면 뒤샹과 그의 작품 '샘(fountain)'을 떠올릴 만큼의 상식은 있는 관람객일지라도 이런 작품 앞에선 '대체 이 작품에서 뭘 보란 거지', '말하고자 하는 게 뭐야' 싶게 대략 난감해질 것이다. 작가나 작품이 요구하는 사유나 소통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윌 곰퍼츠의 '발칙한 현대미술사(원제 What are You Looking At?)는 이렇듯 현대미술 앞에 주눅 들고 이해불능의 난관에 부딪히는 대중을 위한 현대미술 입문서다. 저자는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출발점은 미술의 진화경위를 아는 것부터이며 '예술은 일종의 게임과 같아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도 기본적인 규칙과 규정을 알면 한결 쉽게 다가설 수 있다'고 한다.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모든 기본이 현대미술사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곰퍼츠는 현대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뒤샹부터 시작해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19세기 인상파 이전, 인상주의 시대, 이후 여러 주의, 유파를 건너며 진화되어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강통', 데이미언 허스트의 '상어'로 이어지는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사 전반을 아우르며, 그 속에 천재 예술가들의 치열한 크리에이티브 경쟁과 걸작 탄생에 얽힌 이야기, 결정적이거나 인상적인 순간들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뒤샹이 단지 'r,mutt 1917'라 사인함으로써 소변기가 졸지에 예술작품화한 순간을 보자. '그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조각품을 만들어 냈다고 자평했다. 별다른 미학적 특징이 없는, 기존에 있는 대량생산품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런 다음 그 제품을 본래의 기능적 역할로부터 자유롭게 놓아준다. 다시 말해, 쓸모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제목을 붙여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과 배경지식을 뒤집음으로써 실질적이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뒤샹은 자신이 고안해낸 새로운 예술방식을 '레디메이드(readymade)'라 일컬었다.'

이같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예술가의 예술관과 창작 의도,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으며 적절히 예시되는 작품에 대한 간략, 명쾌한 해석(서두에 든 허스트의 '천년'은 '삶과 죽음' '탄생과 부패'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신의 사랑을 위해'는 죽음을 부정하고 부와 허영심에 타락한 서구의 무감한 시대를 상징한다고)과 예술가간의 에피소드까지-리히텐슈타인과 워홀이 동시에 만화에 착안해 예술적 아이디어를 떠올렸지만 워홀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본 이후 영영 만화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지 않기로 다짐했다는 등-친근하게 전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대미술이 더 이상 위압적이지도 난해하지도 않게 느껴진다. 한 발 더 나아가면 늘 전복적이며 혁명적인 정신으로 새로운 예술의 역사를 일궈오며 대중들의 굳은 의식을 두드려온 현대미술에 매혹될지도 모르겠다. 노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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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미언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해'. 사진=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데이미언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해'. 사진=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노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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