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의 탄생 문영심 지음·시사IN북·377쪽·1만5000원

"나라의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때로는 이 질문에 대해 선뜻 답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만드는 일들이 주위에서 벌어지곤 한다. 분명 1987년 6월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 체제를 이뤘다고 말을 하지만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망령들이 21세기의 한복판에 나타나는 일을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이 또한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의문과 고민에 대해 조금이나마 해결책을 제시해주고자 나온 책이 한 권 있다. 물론 명쾌하게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사건에 대한 전말을 통해 엄청난 거짓과 조작의 사회 속에서 깨어있지 않으면 다음에는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경고가 무의식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하나의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간첩의 탄생'은 탈북자 유우성 씨가 억울하게 간첩으로 내몰렸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사건을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치졸한 사기극을 치밀하게 추적한 책이다.

북한 의사 출신으로서 남쪽으로 내려와 갖은 고생을 이겨내고 서울시 비정규직 공무원이 돼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던 유 씨는 하루아침에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된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국정원이 혐의를 입증하겠다고 내놓은 자백과 자료와 증언은 모두 조작됐거나 불법 수집돼 증거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내려온 평범한 젊은이가 알고 보니 간첩이었다는 '발표'보다도 나라의 큰 기관인 국정원과 검찰이 협력해서 죄 없는 사람을 간첩으로 몰았다는 것이 훨씬 더 큰 충격이었다.

유 씨는 1심과 2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렇더라도 유 씨 스토리는 해피 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국고를 축내가며 생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기를 썼던 국정원과 검찰의 책임자들이 그들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첩 증거 조작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국정원과 검찰 라인은 윗선 아랫선 할 것 없이 모두 처벌받지 않고 빠져나가고 말았다. 국정원과 검찰의 보복성 수사와 조처로, 북한 화교 출신이지만 스스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유 씨와 그 가족은 한국 국적을 유지하거나 새로 취득할 수 없게 돼 더 이상 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할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가해자가 처벌받기는 커녕 다시 피해자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 다큐 작가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보다 훨씬 박진감 있는 법정 드라마를 써내려 간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을 저지른 국가기관과 공무원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할지 묻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이 특별법이나 특별검사가 없어도 모든 국민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고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서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소신을 강력하게 밝힌다. 그것은 바로 조잡한 증거를 조작하는데 예산을 낭비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힌 국가정보원에 대해 국민들이 해체명령을 내리라는 것이다. 또 국정원과 손잡고 증거를 조작하고 인멸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식기관이라는 사실을 내세워 법원을 기망하고 사법체계의 근간을 위태롭게 한 검사들에게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그들이 유 씨에게 구형했던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을 선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간첩의 탄생'은 신문에 게재된 건조한 기사를 읽으면서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생생한 디테일이 숨 쉬고 있어 독자들에게 긴장감과 생동감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평소 친하게 지냈던 국정원 직원이 돌변해 자신을 간첩으로 몰아가는 끔찍한 경험을 하면서 자살을 불사해가며 저항하는 유 씨의 투쟁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턱 막히기도 한다. 유 씨의 동생 유가려 씨가 4개월간 독방에 감금돼 협박과 회유, 구타를 당한 끝에 오빠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허위 자백하는 과정, 그 뒤 극적으로 변호사들의 조력으로 국정원의 손에서 플려나 증언을 뒤집는 순간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바라보며 절망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현실을 바꾸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잠수를 타거나 냉소만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이들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끈질긴 법정 투쟁 끝에 유 씨에게 자유를 돌려준 장경욱 변호사가 한 말이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은 상대가 당황해서 자신을 믿지 못하고 정신무장이 흐트러지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상대를 가지고 놀고 괴롭히는 작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 사람들 앞에서는 비겁하게 회피하는 자들입니다. 배짱 있게 밀고 나가며 치밀하게 대응해 나가면 백전백승입니다."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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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지난 4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지인으로부터 받은 장미꽃을 들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지난 4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지인으로부터 받은 장미꽃을 들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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