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원건수로 가치평가 잘못 사업화 실적따라 인정하고 기업선 정당한 보상 문화를

창조경제 시대! 온 나라가 창업을 장려하고, 아이디어를 특허로 등록하는 데 바쁘다. 필자가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를 방문했을 때 로비에 걸려 있던 특허증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Hand-held calculator(휴대용계산기), 즉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계산기의 원천특허였다.

하지만 특허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활용은 사회를 병들게 할 수 있다. 연구현장에서는 특허 건수가 연구결과나 인사평가의 지표로 사용되는데 특허 가치와 상관없이 단순히 건수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사업화 가능성이 없는 불량특허 양산의 원흉이다. 심지어 진학과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로 특허를 출원하기도 한다. 금년에 노벨 화학상 후보에 오른 한국 교수가 몇 년 전 교수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분이라는 씁쓸한 언론 기사가 이런 평가 왜곡 현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에서 기술사업화 업무를 추진하면서 느낀 특허 출원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권리범위의 문제다. 타인이 따라하지 못하도록 넓은 권리범위로 특허를 출원해야 하는데, 등록이 용이하도록 권리범위를 좁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허로 사업화를 추진하는 기업은 향후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둘째는 특허 출원 국가의 문제다. 특허는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효력이 있으므로 시장 규모가 큰 나라에 출원해야 한다. 그런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대학과 연구기관의 해외 특허 출원 비율은 겨우 17% 수준이다. 한국에 특허를 출원한 후 1년이 지나면 외국에 출원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한국에만 특허가 등록되면 세금으로 개발된 기술을 한국 기업은 사용하지 못하고, 외국 기업은 마음대로 사용하게 되는 역차별이 생긴다.

셋째는 특허 출원 시점의 문제다. 특허는 등록 후 20년 동안만 권리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당분간 시장이 형성되지 않을 기술은 당장 출원하지 말고 출원 시기를 조절해 최대한의 권리보장 기간을 확보해야 하다. 비밀로 보호할 수 있는 노하우는 특허로 출원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 만일 코카콜라 제조 방법을 특허 출원했다면 지금은 그 특허가 만료되어 여러 기업이 판매하고 있을 것이다. 넷째는 특허 소송의 문제다. 한국에서 특허 소송을 제기했을 때 특허권자가 승소할 확률은 약 25%에 불과하다. 반면 스위스는 75%, 미국은 59%에 이른다. 승소한다고 해도 평균 배상액이 7800만 원으로 소송 비용을 제하면 이득이 거의 없다. 후진국일수록 특허침해 손해배상 규모가 작은 경향이 있다.

정부도 특허 출원에 대한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최근에는 연구기관의 평가지표를 특허 수가 아닌 사업화 실적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특허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우선 학교에서부터 특허의 기본철학을 교육해야 한다. 특허를 로또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기업에서 사용되지 않을 특허는 아무 필요가 없음을 교육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에서도 특허 교육 시 철학적인 부분을 더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특허를 출원하는 연구기관부터 심사하는 기관까지 가치 있는 특허가 등록되도록 각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 가치도 없는 특허가 이를 보유한 기업 스스로를 자아도취에 빠지게 하거나, 그 기업에 대한 외부 평가를 왜곡시킬 수 있다. 기업이 속 빈 특허로 기술력을 포장하여 연구자금이나 투자자금을 지원받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특허에 대한 정당한 보상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기업이 남의 특허로 돈을 벌었으면 당연히 대가를 지불하는 건전한 문화가 형성되어야 좋은 특허가 많이 나올 것이다. 외국에서 특허를 등록한 모 교수가 한국에 돌아와서 10년 넘도록 로열티를 받는 것을 보았다. 특허 강국은 특허 수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윤병한 대덕연구개발특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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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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