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장수 주둔·형제 싸움 유래 한국 현재 행정·정치와 닮아 양보·타협 없는 정쟁은 접고 행정수도 본래기능 되살려야 "

최근 '원수'라는 단어 때문에 정계가 시끄러워진 일이 있다. 야당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향하여 "당신은 국가의 원수가 맞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 여당에서는 이 말을 놓고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여당에서는 원수(元首)를 원수(怨讐)라고 해석을 한 것이리라.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어려운 별칭을 가진 세종시에는 해발 254m의 원수산(元帥山)이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오르면, 세종시를 비롯하여 꿈틀거리는 계룡산 능선까지 360도로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다. 2000년 산 중턱에 세워진 원수산 유래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원수산은 고려 충렬왕 17년 1291년에 몽고 합단적(哈丹賊)이 원(元)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원의 관군에 쫓겨 남하하여 고려를 침범해 오므로 (…중략…) 원나라 군사와 함께 야밤에 주둔지를 출발하여 새벽에 정좌산(正坐山) 서면 쌍전리에 위치한 산 아래에서 싸워 크게 이기고 공주 웅진까지 추적하니 땅에 깔린 시체가 30여 리까지 연하였으며, 베인 머리와 노획한 병기 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이 전투를 연기대첩이라고 하며, 세속에서 이때부터 군사 주둔지를 원수산이라고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원수산 정상에는 '원수 형제봉'이라는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전설을 전하고 있다.

"옛날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한 동네에 살면서 사이가 좋았으나 욕심 많은 형 때문에 불화가 일어났다. (…중략…) 동생은 하인들과 형의 집으로 몰려가 전쟁처럼 싸움을 하고 동생의 하인이 형의 하인들을 모두 죽인 후 만세를 부르자 난데없이 하늘에서 우레 같은 천둥번개가 치더니, 그곳에서 땅이 솟아올라 두 개의 산봉우리가 되었다. 싸워 이긴 동생은 큰 봉우리, 형은 작은 봉우리라 하여 이곳을 원수 형제봉이라 불렀다."

우리가 어릴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두 형제의 의좋은 이야기와는 정반대 이야기이다. 아마도 원수라는 단어에서 유추된 동네 사람들의 기분이 이렇게 전설로 변하여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전시 군사를 통솔하는 일을 맡아보던 장수인 원수(元帥)들이 주둔했고, 이들이 연기대첩에서 크게 이긴 것을 기념하여 원수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이 전투로 지역의 수많은 백성들이 화를 당했을 것이고, 그리하여 원수(怨讐) 같은 원수산이라고 불리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욕심 많은 형 때문에 두 형제 간에 전쟁 같은 싸움이 일어나, 결국 두 형제 다 천둥·번개로 죽어 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마치 지금의 우리나라 정세를 예언한 것 같기도 하여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국회에서는 큰 형이라고 할 수 있는 여당이 세월호법 제정에 양보하지 않고, 동생인 야당을 몰아치며 싸우다가 결국은 두 당이 모두 공멸할지도 모를 사태를 연상하게도 한다. 또한 한겨레이면서 남북으로 갈라진 남과 북이 서로 양보와 타협 없이 이 상태로 가다가 전쟁이라도 터지면 역시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 같기도 하다. 공존을 위해서는 있는 형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서울의 부자 동네인 강남에 살고 있던 헌법재판관들의 관습헌법이라는 생뚱맞은 논리 때문에, 세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형 형태의 찢어진 정부 배치를 하고 있다. 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대법관들은 서울에, 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36개 중앙행정기관들은 이곳 원수산 아래 떨어져 살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동생들이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면서 길에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이러한 행정의 비효율성 때문에 결국 대한민국호가 좌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원수 형제봉'의 유래가 경고라도 하는 것 같다.

차제에 원수산의 이름도 원수산(元帥山)이 아닌 원수산(元首山)으로 바꾸고, 명실 공히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원수(元首)가 거처하고 있는 곳으로 만들어,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정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삼권분립 원칙을 주장하는 대통령만이라도 행정수반으로서 중앙행정기관들 이웃인 원수산 아래에 터전을 마련해서,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하고 원수산 형제봉의 유래비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이규금 여행작가·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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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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